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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 황동규

효림♡ 2015. 12. 18. 09:00

* 눈 - 황동규 

오 눈이로군  
그리고 가만히 다닌 길이로군  
입김 뒤에 희고 고요한 아침  
잠간 잠간의 고요한 부재  
오 눈이로군.  
어떤 돌아옴의 언저리  
어떤 낮은 하늘의 빛  
언저리와 빛을 가진 죽음이 되기 위하여  
나는 꿈꾼다, 꿈꾼다, 눈빛 가까이  
한 가리운 얼굴을  
한 차고 밝은 보행을. *

*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砲)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