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 황동규
오 눈이로군
그리고 가만히 다닌 길이로군
입김 뒤에 희고 고요한 아침
잠간 잠간의 고요한 부재
오 눈이로군.
어떤 돌아옴의 언저리
어떤 낮은 하늘의 빛
언저리와 빛을 가진 죽음이 되기 위하여
나는 꿈꾼다, 꿈꾼다, 눈빛 가까이
한 가리운 얼굴을
한 차고 밝은 보행을. *
*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의 하루 - 롱펠로 (0) | 2016.04.01 |
---|---|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 이병률 (0) | 2016.02.19 |
오래된 물음 - 김광규 (0) | 2015.11.02 |
각시붓꽃 - 문효치 (0) | 2015.10.25 |
오리는 순간을 기다린다 - 허만하 (0) | 2015.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