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오래된 물음 - 김광규

효림♡ 2015. 11. 2. 18:59

* 오래된 물음 - 김광규

누가 그것을 모르랴
시간이 흐르면
꽃은 시들고
나뭇잎은 떨어지고
짐승처럼 늙어서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
땅으로 돌아가고
하늘로 사라진다
그래도 살아갈수록 변함없는
세상은 오래된 물음으로
우리의 졸음을 깨우는구나
보아라
새롭고 놀랍고 아름답지 않으냐
쓰레기터의 라일락이 해마다
골목길 가득히 뿜어내는
깊은 향기
볼품없는 밤송이 선인장이
깨어진 화분 한 귀퉁이에서
오랜 밤을 뒤척이다가 피워 낸
밝은 꽃 한 송이
연못 속 시커먼 진흙에서 솟아오른
연꽃의 환한 모습
그리고
인간의 어두운 자궁에서 태어난
아기의 고운 미소는 우리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지 않느냐
맨발로 땅을 디딜까 봐
우리는 아기들에게 억지로
신발을 신기고
손에 흙이 묻으면
더럽다고 털어 준다
도대체
땅에 뿌리박지 않고
흙도 몸에 묻히지 않고
뛰놀며 자라는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
튀어 오르는 몸
그 샘솟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 김광규시집[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문학과비평사,1988

 

* 왼손잡이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어야 하듯 
당신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나에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당신은 지금 왼손으로 
면도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오른손으로 
빗질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