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시붓꽃 - 문효치
불면의 밤
뼛속으로는
뜨신 달이 들어오고
여기 체액을 섞어
허공에 환장할 그림을 그리는 것
유난히 암내도 많은
남의 각시 *
* 땅 끝에서
이 힘을 어찌할거나
하늘가, 아무리 솟구쳐 뛰어도
식지 않는 사랑
땅 끝에 이르러 그리움이 되는데
세월 건너 아스라이 가버린 그대
그리움에 씻겨 단단한 보석이 되다가
그것도 지쳐 바스라져 가는데
저 혼자 솟구쳐 뛰어오르는
이 힘을 어찌할거나 *
* 싸움 -백제시편 11
싸움은 이미 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백의 오천 병사는 죽기 위해 싸웠다 그것이 그들의 죽는 방법이었다 무덤의 앞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면서 그들은 각각 한 덩이의 단단한 빛이 되어 달려 들어갔다 빛은 이 땅에 선 것들을 밝히고 그 후예의 눈을 밝혔다 죽음의 고통은 순간이었고 그 순간의 좁은 통로를 지나면 곧바로 무덤의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뒷문을 통해 무한의 자유에로 나갔다 그들의 죽는 방법은 이렇게 당당하고 지혜로웠다 *
* 들꽃
누가 보거나 말거나
피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지네
한마디 말도 없이
피고 지네
* 사랑법
말로는 하지 말고
잘 익은 감처럼
온몸으로 물들어 드러내 보이는
진한 감동으로
가슴속에 들어와 궁전을 짓고
그렇게 들어와 계시면 되는 것 *
* 거꾸로여덟팔나비
시인은 세상을 꺼꾸로 보기도 한다지만
시인도 아닌 이들이 내 이름에 ‘꺼꾸로 여덟팔’을 붙였을까
날개 가운데 새겨진 흰 띠무늬는
꽁무니 쪽에서 보면 거꾸로 여덟팔자지만
얼굴 쪽에서 보면 옳은 여덟팔자요
그것도 석봉이나 추사의 글씨보다 더 아름다운데
왜?
얼굴을 대면하기 껄끄러운가?
하기사 인간들이란 부끄러운 일도 많아 그렇긴 하지만 *
* 별박이자나방
등에
외계로 가는 길이 보인다
피타고라스가 걷던 길에
에너지가 모여들어
거대한 별들의 숲이 자라고
우리의 삶이 하늘로 이어진다
이 길에서 권력이 나온다
하늘의 입구에 백로자리가 날개를 펄럭인다
우주의 축이 수직으로 일어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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