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각시붓꽃 - 문효치

효림♡ 2015. 10. 25. 09:00

 

* 각시붓꽃 - 문효치 

불면의 밤

뼛속으로는

뜨신 달이 들어오고

 

여기 체액을 섞어

허공에 환장할 그림을 그리는 것

 

유난히 암내도 많은

남의 각시 *

 

* 땅 끝에서  
이 힘을 어찌할거나
하늘가, 아무리 솟구쳐 뛰어도
식지 않는 사랑
땅 끝에 이르러 그리움이 되는데
세월 건너 아스라이 가버린 그대
그리움에 씻겨 단단한 보석이 되다가
그것도 지쳐 바스라져 가는데
저 혼자 솟구쳐 뛰어오르는
이 힘을 어찌할거나 *

 

* 싸움 -백제시편 11 
싸움은 이미 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백의 오천 병사는 죽기 위해 싸웠다 그것이 그들의 죽는 방법이었다 무덤의 앞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면서 그들은 각각 한 덩이의 단단한 빛이 되어 달려 들어갔다 빛은 이 땅에 선 것들을 밝히고 그 후예의 눈을 밝혔다 죽음의 고통은 순간이었고 그 순간의 좁은 통로를 지나면 곧바로 무덤의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뒷문을 통해 무한의 자유에로 나갔다 그들의 죽는 방법은 이렇게 당당하고 지혜로웠다 *

 

* 들꽃

누가 보거나 말거나
피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지네

 

한마디 말도 없이
피고 지네

 

* 사랑법

말로는 하지 말고

잘 익은 감처럼

온몸으로 물들어 드러내 보이는

 

진한 감동으로

가슴속에 들어와 궁전을 짓고

그렇게 들어와 계시면 되는 것 *

 

* 거꾸로여덟팔나비

시인은 세상을 꺼꾸로 보기도 한다지만

시인도 아닌 이들이 내 이름에 ‘꺼꾸로 여덟팔’을 붙였을까

 

날개 가운데 새겨진 흰 띠무늬는

꽁무니 쪽에서 보면 거꾸로 여덟팔자지만

얼굴 쪽에서 보면 옳은 여덟팔자요

그것도 석봉이나 추사의 글씨보다 더 아름다운데

 

왜?

얼굴을 대면하기 껄끄러운가?

하기사 인간들이란 부끄러운 일도 많아 그렇긴 하지만 *

 

* 별박이자나방

등에

외계로 가는 길이 보인다

피타고라스가 걷던 길에

에너지가 모여들어

거대한 별들의 숲이 자라고

우리의 삶이 하늘로 이어진다

이 길에서 권력이 나온다

하늘의 입구에 백로자리가 날개를 펄럭인다

우주의 축이 수직으로 일어선다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 황동규  (0) 2015.12.18
오래된 물음 - 김광규   (0) 2015.11.02
오리는 순간을 기다린다 - 허만하  (0) 2015.10.20
국화 - 황금찬  (0) 2015.10.05
달려라 도둑 - 이상국  (0) 201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