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다시 사랑이 온다 - 이정하

효림♡ 2016. 10. 18. 09:30

* 단풍 - 이정하
바람이 내게 일렀다.

이제 그만 붉어지라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 없다고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내 몸을 불태우겠다고

 

사랑아, 네가 미워서 떠나는 것이 아님을 믿어다오

떠나는 그 순간, 가장 불타오르는 내 몸을 보아라

 

줄 것 다 주고 가장 가벼운 몸으로

나무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이 아름다운 추락을 *

 

* 보여줄수 없는 사랑

그대 섣불리 짐작치 마라

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의 크기가 작았을 뿐
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

그대가 본 것이 작았을 뿐

 

하늘을 보았다고 그 끝을 본 건 아닐 것이다
바다를 보았다고 그 속을 본 건 아닐 것이다

속단치 마라, 그대가 보고 느끼는 것보다

내 사랑은 훨씬 더 크고 깊나니

 

보여줄래야 보여줄 수 없는

내 깊은 속마음까지 다 보지 못하고

 

그대 나를 안다고 함부로 판단치 마라

내 사랑 작다고 툴툴대지 마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

 

마음이 작다고

어디 사랑까지 작겠느냐

* 어둠까지

빛에 눈멀어 사랑에 빠지면
그의 어둠은 볼 수 없게 된다

나중에야 발견하고선
왜 감추었느냐고 따지지 마라

사랑은,
그 어둠까지 감싸주는 일이다 *

 

* 흔들바위

아버지

눈물 흘리시는 것

감추지 않으셔도 돼요

바람만 살짝 불어도

덜컹대는 모습 다 아는데요

그래도 아버지께선 늘

제자리로 돌아오시잖아요

조금 흔들렸다가

잠시 흔들렸다가 *

 

* 마른 가슴에도 사랑은 돋아난다

세상 어디에도

꽃 피지 않은 곳은 없었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풀 한 포기 돋아나고

아무리 작은 풀이라도

꽃은 피우나니

 

그대 보지 못하는가

내가 피운 꽃송이 하나를

척박한 땅에도 꽃은 피어나듯

마른 가슴에도 사랑은 돋아나느니

그대 보지 못하는가

보고도 모른 척 하는가

그대 향한 나의 마음을 *

 

* 함박눈

수제비를 먹으며 왈칵 눈물이 난 것은

뜨거운 김 때문이 아니다

매운 고추가 들어가서도 아니다

 

어느 해 겨울, 빨갛게 언 손으로 내오시던

한 그릇 어머니 가난한 살림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괜찮다 어여 먹어라

내 새끼 배는 안 곯려야지

 

문득 고개 들어보니

분식집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날 어머니가 떠먹여주던 수제비 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

 

* 사랑한다는 것
그를 위해 기도할 각오 없이
사랑한다고 생각지 마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까지
그 사람만 생각한다고 해서
사랑이라고 생각지 마라

사랑한다는 것은
어느 한 쪽으로 물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색깔로 서로 빛나게 하는 것

함께 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 그대 먼저 먼 길 보내고
나 혼자 모든 걸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를 내게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버리는 것임을

그를 위해 기도할 각오 없이
사랑한다고 생각지 마라 *

* 이정하시집[다시 사랑이 온다]-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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