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을 맞는 자세 1 - 이정하
봄이 왔다고
소란 떨지 마라
지천에 널리고 널린 꽃무리 예쁘다고
호들갑떨지 마라
그전에 잠시 묵념할 것
무사히 지난겨울을 나게 해준
것들에 대해
고마웠다고 손 흔들어줄 것
봄이 오기까지 우리를 따스하게 해준
모든 것들에 대해
* 봄을 맞는 자세 2
봄이 와서 꽃 피는 게 아니다
꽃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긴 겨울 찬바람 속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면서도
기어이 새움이 트고 꽃 핀 것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고 있던
봄을 데려오기 위함이다
골방에 처박혀 울음만 삼키고 있는 자여,
기다린다는 핑계로 문을 잠그지 마라
기별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 나서면 될 일,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와야 할 누군가가
대문 밖 저 너머에 있다
내가 먼저 꽃 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문 열고 나서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끝끝내 추운 겨울이다
* 이정하시집[다시 사랑이 온다]-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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