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주전자 - 유병록

효림♡ 2017. 11. 23. 09:00
* 주전자 - 유병록

누가 내다 버렸을까

우그러지고 칠 벗겨진 달이 비를 맞는다

지붕도 처마도 없어

빗방울이 광대뼈에 그대로 꽂힌다

높이 떠올랐을 때 그 빛으로 여럿이 따뜻했겠다

달을 두고 둘러앉아 동그랗게 입술을 모으기도 했으리

기울이면 온기가 흘러나오고 기울이면 사랑이 흘러나오고

달 속으로  들어가 한잔 술을 마시는 자가 있었으리

달을 향해 두 손 모으는 아이들이 있었으리

월식의 밤이면

곤궁한 얼굴들은 지척에 있어도 서로를 분간하지 못하였겠지만

그림자의 시간을 돌아서 다시 떠올랐을

저 노란 달

여기저기 함몰된 채 비를 맞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주먹처럼 쏟아지는 세월의 골목에서 떨고 있다

이제 아무도 저것을 달이라 부르지 않는다

저 달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

 

* 유병록시집[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창비, 2014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 - 김이듬  (0) 2017.12.01
겨울 여행자 - 황학주  (0) 2017.12.01
날마다 강에 나가 - 박남준  (0) 2017.11.23
오솔길을 염려함 - 장석남  (0) 2017.10.10
친절한 경고 - 박남준   (0) 201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