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 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나무와 나무 사이엔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 좋아하는 詩 2019.07.19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문정희 *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문정희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숨죽여 홀로 운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못 볼지도 몰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좋아하는 詩 2015.05.04
비망록 - 문정희 * 비망록 - 문정희 남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 좋아하는 詩 2014.09.25
사람의 가을 - 문정희 * 사람의 가을 - 문정희 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입니다 별과 별 사이 너와 나 사이 가을이 왔습니다 맨 처음 신이 가지고 온 검으로 자르고 잘라서 모든 것은 홀로 빛납니다 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 저 자유로이 홀로인 새들 저 잎과 저 새를 언어.. 좋아하는 詩 2010.11.01
문정희 시 모음 *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 시인 詩 모음 2010.02.08
부부 - 문정희 * 부부 -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좋아하는 詩 2010.02.08
사람에게 - 문정희 * 사람에게 - 문정희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 너는 누구냐 밤하늘 가득 기어나온 별들의 체온에 추운 몸을 기댄다 한 이름을 부른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허공을 뚫어 문 하나를 내고 싶다 .. 좋아하는 詩 2009.02.25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좋아하는 詩 2008.12.07
겨울사랑 - 문정희 *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좋아하는 詩 2008.11.07
남편 - 문정희 *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 좋아하는 詩 2008.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