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 도종환 *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저녁 햇살 등에 지고 반짝이는 억새풀은 가을 들판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차가워지는 바람에 꽃손을 비비며 옹기종기 모여 떠는 둘국화나 구절초는 고갯길 언덕 아래에 있을 때에 더욱 청초하다 골목길의 가로등, 갈림길의 이정표처럼 있어.. 도종환* 2009.08.10
오늘 밤 비 내리고 - 도종환 * 오늘 밤 비 내리고 - 도종환 오늘 밤 비 내리고 몸 어디인가 소리없이 아프다 빗물은 꽃잎을 싣고 여울로 가고 세월은 육신을 싣고 서천으로 기운다 꽃 지고 세월 지면 또 무엇이 남으리 비 내리는 밤에는 마음 기댈 곳 없어라 * * 도종환 시집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문학동네 도종환* 2009.08.10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 도종환 *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장미꽃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 오는 달디단 향기 겉꽃잎과 속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매혹적인 자태 장미는 가장 많이 사랑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 도종환* 2009.08.10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 도종환* 2009.08.10
새벽 초당 - 도종환 * 새벽 초당 - 도종환 초당에 눈이 내립니다 달 없는 산길을 걸어 새벽의 초당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오래된 실의와 편력과 좌절도 저를 따라 밤길을 걸어오느라 지치고 허기진 얼굴로 섬돌 옆에 앉았습니다 선생님,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릉의 나라는 없고 지상의 날들만이 .. 도종환* 2009.08.10
섬 - 도종환 * 섬 - 도종환 당신이 물결이었을 때 나는 언덕이라 했다 당신이 뭍으로 부는 따스한 바람이고자 했을 때 나는 까마득히 멈추어 선 벼랑이라 했다 어느 때 숨죽인 물살로 다가와 말없는 바위를 몰래몰래 건드려보기도 하다가 다만 용서하면서 되돌아 갔었노라 했다 언덕뿐인 뒷모습을 바.. 도종환* 2009.08.10
새벽별 - 도종환 * 초저녁 - 도종환 혼자서 바라보는 하늘에 초저녁 별이 하나 혼자서 걸어가는 길이 멀어 끝없는 바람 살아서 꼭 한번은 만날 것 같은 해거름에 떠오르는 먼 옛날 울며 헤진 그리운 사람 하나 * * 별 아래 서서 별 하나 흐르다 머리 위에 머뭅니다 나도 따라 흐르다 별 아래에 섭니다 이렇게 .. 도종환* 2009.08.10
해인으로 가는 길 - 도종환 * 해인으로 가는 길 - 도종환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다 해인으로 가는 길에 물소리 좋아 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 그래도 신을 벗고 바람이 나뭇잎과 쌓은 중중연기 그 질긴 업을 풀었다 맺었다 하는 소리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지난 몇십 년.. 도종환* 2009.07.31
목백일홍 - 도종환 * 목백일홍 -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러워지는 꽃 같은 사.. 도종환* 2009.07.23
저녁 무렵 - 도종환 * 저녁 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등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 도종환* 2009.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