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백령도(夢遊白翎圖) - 정희성 * 몽유백령도(夢遊白翎圖) - 정희성 풍경은 얼마쯤 낯설어야 풍경이고 시도 얼마쯤 낯설어야 시가 된다 이 섬의 이름은 원래 곡도(鵠島) 따오기 모양의 거대한 흰 날개를 가졌다는 이 섬의 아름다움은 기이하다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을 마치고 두무진(頭武津)으로 가 유람선을 탔.. 좋아하는 詩 2013.08.19
추삼제(秋三題) - 이희승 * 추삼제(秋三題) - 이희승 - 벽공(碧空)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하고 금이 갈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드리우고 있건만 - 낙엽 시간에 매달려 사색에 지친 몸이 정적(靜寂)을 타고 내려 대지에 앉아보니 공간을 바꾼 탓인가 방랑길이 멀구나 - .. 좋아하는 詩 2013.07.22
천천히 가는 시계 - 나태주 * 천천히 가는 시계 - 나태주 천천히, 천천히 가는 시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수탉이 길게, 길게 울어서 아, 아침 먹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을 하고 뻐꾸기가 재게, 재게 울어서 어, 점심 먹을 때가 지나갔군 느끼게 되고 부엉이가 느리게, 느리게 울어서 으흠, 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군 깨닫게.. 좋아하는 詩 2013.07.18
팔만대장족경 - 유홍준 * 팔만대장족경 - 유홍준 고향집 장독대에 이제는 다 채울 일 사라져버린 서 말가웃 장독 하나가 있다 흘러내린 바지춤을 스윽 끌어올리듯 무심코 난초 잎을 그려넣은 장독 앞에서 팔만 개의 족적을 본다 반죽을 다지고 또 다졌을 팔만 개의 발자국소리를 듣는다 누가 한 덩어리 흙 위에 .. 좋아하는 詩 2013.07.17
외딴집 대추나무 - 권정생 * 외딴집 대추나무 - 권정생 캄캄한 밤이면 외딴집 대추나무는 조금 쓸쓸하다. 조롱조롱 대추열매를 달고 구불구불 가지를 뻗고 커다란 키에 어른이면서도 대추나무는 아무도 없는 밤이면 조금은 쓸쓸하다. 하늘에 반짝거리는 별을 세다가 가느다랗게 휘파람도 불다가 그래도 잠이 안 오.. 좋아하는 詩 2013.07.17
황홀한 국수 - 고영민 * 옛날 국수 가게 - 정진규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 좋아하는 詩 2013.07.16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 김남극 *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 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 좋아하는 詩 2013.07.12
모란의 연(緣) - 류시화 * 모란의 연(緣) - 류시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 좋아하는 詩 2013.07.12
상처가 나를 살린다 - 이대흠 * 나 아직 이십대 - 이대흠 꽃처럼 무너지면 시절 있었네 나 아직 이십대 늙은 사내처럼 추억을 말하네.... 내 가슴 한 켠에 자갈 하나 던져두고 사라져간 물결 있었네 그 물결 속으로 그리움의 나뭇가지를 꺾으며 나는 제발 내게 기적이 없기를 빌었네 삶이 전쟁이므로 사랑도 전쟁이었고 .. 좋아하는 詩 2013.07.12
천둥을 기리는 노래 - 정현종 * 천둥을 기리는 노래 - 정현종 여름날의 저 천지 밑 빠지게 우르렁대는 천둥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이 그 마음과 몸을 씻었겠느냐, 씻어 참 서늘하게는 씻어 문득 가볍기는 허공과 같고 움직임은 바람과 같아 왼통 새벽빛으로 물들었겠느냐 천둥이여 네 소리의 탯줄은 우리를 모두 신생.. 좋아하는 詩 201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