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노래 - 이기철 * 생의 노래 - 이기철 옴 돋는 나무들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흙 속에서 초록이 돋아나는 걸 보면 경건해진다. 삭은 처마 아래 내일 시집 갈 처녀가 신부의 꿈을 꾸고 녹슨 대문 안에 햇빛처럼 밝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의 이름과 함께 생애을 살고 풀잎의 이름으로 시를 쓴다 세.. 좋아하는 詩 2014.04.04
이 순간 - 피천득 *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 좋아하는 詩 2014.03.17
꽃 찢고 열매 나오듯 - 장옥관 * 꽃 찢고 열매 나오듯 - 장옥관 싸락눈이 문풍지를 때리고 있었다 시렁에 매달린 메주가 익어가던 안방 아랫목에는 갓 탯줄 끊은 동생이 포대기에 싸인 채 고구마처럼 새근거리고 있었다 비릿한 배내옷에 코를 박으며 나는 물었다 ―엄마, 나는 어디서 왔나요 웅얼웅얼 말이 나오기 전에.. 좋아하는 詩 2014.01.07
눈 오는 날에 - 조지훈 * 눈 오는 날에 - 조지훈 검정 수목 두루마기에 흰 동정 달아 입고 창에 기대면 박넌출 상기 남은 기울은 울타리 위로 장독대 위로 새하얀 눈이 나려 쌓인다 홀로 지니던 값진 보람과 빛나는 자랑을 모조리 불사르고 소슬한 바람 속에 낙엽(落葉)처럼 무념(無念)히 썩어가면은 이 허망(虛.. 좋아하는 詩 2014.01.03
새해 새 아침은 - 신동엽 * 새해 새 아침은 - 신동엽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빝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 좋아하는 詩 2014.01.02
행복 - 허영자 해돋이 - 장욱진 * 행복(幸福) - 허영자 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거야.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 아이들이 보물찾기 놀일 할 때 보물을 감춰 두는 바위틈새 같은 데에 나무구멍 같은 데에 행복은 아기자기 숨겨져 있을 거야. 좋아하는 詩 2014.01.01
말 - 정지용 * 말 1 - 정지용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 너는 웨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이말은 누가 난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 * 말 2 청대나무 뿌리를 우여어차! 잡어 뽑다가 궁둥이를 찌였네. 짠 조수물에 흠뻑 불리워 휙 .. 좋아하는 詩 2013.12.27
꽃이 피는 너에게 - 김수복 * 꽃이 피는 너에게 - 김수복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 가장 잘 자란 나무 밑에는// 가장 잘 썩은 시체가 누워 있다고// 가장 큰 사랑의 눈에는// 가장 깊은 슬픔의 눈동자가 있다고// 봄나무에게서 꽃이 피는 너에게 * * 달의 눈빛을 보았다 배가 배 위에 떠 있다 몸이 출렁일 때마다 가라앉았.. 좋아하는 詩 2013.12.19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히치콕의 5단 서랍장 - 유형진 *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히치콕의 5단 서랍장 - 유형진 히치 콕, 히치 콕, 히치 히치 콕, 콕. 히치콕의 5단 서랍장을 열기 위한 주문입니다. 바늘방석 열두 개와 18인치 새장 여섯 개를 준비하고 주문을 외웁니다. 히치 콕, 히치 콕, 히치 히치 콕, 콕. 첫 번째 서랍을 열면 남자 와이셔츠와 .. 좋아하는 詩 2013.12.16
겨울 이야기 - 김상미 * 겨울 이야기 - 김상미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문 열고 있었다 문 밖 짧은 해거름에 주저앉아 햇빛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북향, 쓸쓸한 그 바람소리 듣고 있었다 어떤 누구와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싶지 않을 때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창 나뭇잎 다 떨어진 그 소리 듣고 있었다 .. 좋아하는 詩 201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