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김사인 * 나비 - 김사인 오는 나비이네 그 등에 무엇일까 몰라 빈 집 마당켠 기운 한낮의 외로운 그늘 한 뼘일까 아기만 혼자 남아 먹다 흘린 밥알과 김칫국물 비어져나오는 울음일까 나오다 턱에 앞자락에 더께지는 땟국물 같은 울음일까 돌보는 이 없는 대낮을 지고 눈시린 적막 하나 지고 가는.. 좋아하는 詩 2014.05.13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 *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어가는 곡식 위를 비추고, 잔잔한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의.. 좋아하는 詩 2014.05.05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 김명인 *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 김명인 철썩이며 부서지는 파도의 실패들 감았다 풀었다 되감는 이것을 놀이라 할까? 태곳적부터 펼쳐놓은 실마리니 파도는 써버릴 무료 무진장 남아 있다 넘볼 수 없는 해발의 아득한 넓이 푸르둥둥한 걸신들이 저녁을 끌고 온다 가장 낮은 현을 건드.. 좋아하는 詩 2014.05.01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 좋아하는 詩 2014.04.30
천로역정(天路歷程), 혹은 -사랑, 그 잦은 한 잎 - 김정웅 *천로역정(天路歷程), 혹은 -사랑, 그 잦은 한 잎 - 김정웅 꽃은 온갖 빛깔과 향기로 다투듯이 곱고 잎은 초록 한 가지로 오직 편안하니 꽃은 일찍 시들며 일찍 시들매 그 모습 더욱 가련코 마음 서럽고 서글플지나 잎은 늦서리 나중에 맞고 또 맞으며 비로써 홍황(紅黃)으로 어슷비슷 물드.. 좋아하는 詩 2014.04.26
세월에 대하여 - 이성복 * 세월에 대하여 - 이성복 1 석수(石手)의 삶은 돌을 깨뜨리고 채소 장수의 삶은 하루 종일 서 있다 몬티를 닮은 내 친구는 동시상영관(同時上映館)에서 죽치더니 또 어디로 갔는지 세월은 갔고 세월은 갈 것이고 이천 년 되는 해 아침 나는 손자(孫子)를 볼 것이다 그래 가야지 천국(天國).. 좋아하는 詩 2014.04.21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 채호기 * 해 질 녘 - 채호기 따뜻하게 구워진 공기의 색깔들 멋지게 이륙하는 저녁의 시선 빌딩 창문에 불시착한 구름의 표정들 발갛게 부어오른 암술과 꽃잎처럼 벙그러지는 하늘 태양이 한 마리 곤충처럼 밝게 뒹구는 해 질 녘, 세상은 한 송이 꽃의 내부 * *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 채호.. 좋아하는 詩 2014.04.21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 로저 핀취즈 *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 로저 핀취즈 길이 너무 멀어 보일 때 어둠이 밀려올 때 모든 일이 다 틀어지고 친구도 찾을 수 없을 때 그때는 기억하세요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웃음 짓기가 어렵고 기분이 울적할 때 날려고 날개를 펴도 날아오를 수 없을 때 그때는 기억하세요 사랑.. 좋아하는 詩 2014.04.18
지상의 끼니 - 이기철 * 지상의 끼니 - 이기철 종일 땀 흘리고 돌아와 바라보는 식탁 위 밥 한 그릇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한 신발, 올이 닳은 양말 불빛 아래 보이는 저 거룩한 것들 한 종지의 간장, 한 접시의 시금치 무침 한 컵의 물, 한 대접의 콩나물 국 부딪치면 소리내는 한 쟁반의 멸치볶음 저것들이 내 하.. 좋아하는 詩 201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