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서 - 이성부 * 산길에서 - 이성부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밭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내음이라.. 좋아하는 詩 2014.07.10
청개구리와 민달팽이 - 이은봉 * 꾀꼬리 달 - 이은봉 그래요 달은 깃털 샛노란 꾀꼬리지요 부리조차 샛노랗지요 달은 어두운 밤하늘 환하게 쪼아대다가 그만 지쳤나 봐요 우리 집 베란다에까지 날아와 플라스틱 창들을 쪼아대고 있네요 샛노란 깃털을 뽑아 주방 안에 자리를 펴는 것을 보면 달은 배가 고픈가 봐요 으음.. 좋아하는 詩 2014.07.03
기도 - 헤르만 헤세 * 인도하소서 - J. H. Newman (영국의 가톨릭 사제) 인도하소서, 부드러운 빛이여, 사방은 어두움에 잠기오니 그대 나를 인도하소서. 밤은 깊고 집까지는 길이 멉니다. 나를 인도 하소서. 내 발을 지켜 주소서. 먼 경치를 보려고 구하는 것이 아니오니 한발치만 밝혀 주시면 족하나이다. 전에는.. 좋아하는 詩 2014.07.01
가슴에 묻은 김치 국물 - 손택수 * 가슴에 묻은 김치 국물 - 손택수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치 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치 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 보면 김치 국물이 .. 좋아하는 詩 2014.06.28
식후에 이별하다 - 심보선 * 식후에 이별하다 - 심보선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 좋아하는 詩 2014.06.27
질경이의 꿈 - 임경묵 * 질경이의 꿈 - 임경묵 질경이도 꽃을 피우냐고요 바람이 구름을 딛고 하루에도 수천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백산 정상에서 꽃 안 피우고 살아남는 게 어디 있나요 노루오줌도 찰랑찰랑 지린 꽃을 피우고 심지어 개불알꽃까지 질세라 덜렁덜렁 망태를 흔드는데요 사실 말이지 그렇게 .. 좋아하는 詩 2014.06.23
엄마의 런닝구 - 배한권 * 꾸중 - 정호승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 무심코 솔잎을 한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 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 말은 못 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 앞.. 좋아하는 詩 2014.06.23
난초(蘭草) - 서정주 * 난초(蘭草) - 서정주 하늘이 하도나 고요하시니 난초는 궁금해 꽃 피는 거라 * * 밤에 핀 난초(蘭草)꽃 한 송이 난초꽃이 새로 필 때마다 돌들은 모두 금강석(金剛石)빛 눈을 뜨고 그 눈들은 다시 날개 돋친 흰 나비 떼가 되어 은하(銀河)로 은하로 날아 오른다. * 바위와 난초(蘭草)꽃 바위.. 좋아하는 詩 2014.06.04
바다 - 정지용 * 바다 1 - 정지용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 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어서 몰아 온다. 간 밤에 잠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젔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어 들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추어. * * 바다 2 한 백년 진흙 속에 숨.. 좋아하는 詩 2014.06.03
다시 느티나무가 - 신경림 * 먼 데, 그 먼데를 향하여 - 신경림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어느날 나는 집을 나왔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이쯤은 꽃도 나무도 낯이 설겠지, 새소리도 짐승 울음소리도 귀에 설겠지, 짐을 풀고 찾아들.. 좋아하는 詩 201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