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 좋아하는 詩 2014.10.06
약초 캐는 사람 - 이동훈 * 약초 캐는 사람 - 이동훈 언젠가 일 없는 봄이 오면 약초 캐는 산사람을 따라가려 해. 짐승이 다니는 길로만 가는 그를 안간힘으로 따라붙으면 물가 너럭바위 어디쯤 쉬어가겠지. 버섯이나 풀뿌리 얼마큼을 섞어 근기 있는 라면으로 배를 불리면 마른 노래 한 소절이라도 읊게 될 것만 .. 좋아하는 詩 2014.10.02
안부 - 장석남 * 저물녘 -모과의 일 - 장석남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고요의 눈망울 속에 묻어둔 보석의 살들 -이마 눈 코 깨물던 어깨, 점이 번진 젖, 따뜻한 꽃까지 다 어루어서 잠시 골라 앉은 바윗돌아 좀 무겁느냐? 그렇게 청매빛으로다가 저문다 결국 모과는 상.. 좋아하는 詩 2014.09.29
자전거 - 김명국 * 자전거 - 김명국 자전거를 하나 갖고 싶다 차를 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비웃을지 모르지만 바퀴와 페달만 괜찮다면 브레이크만 이상 없다면 헌 자전거라도 상관없으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얼굴이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눈이 노루처럼 선한 긴 생머리의 여자.. 좋아하는 詩 2014.09.29
씨앗을 받으며 - 허영자 * 씨앗을 받으며 - 허영자 가을 뜨락에 씨앗을 받으려니 두 손이 송구하다 모진 비바람에 부대끼며 머언 세월을 살아오신 반백의 어머니, 가을 초목이여 나는 바쁘게 바쁘게 거리를 헤매고도 아무 얻은 것 없이 꺼멓게 때만 묻어 돌아왔는데 저리 알차고 여문 황금빛 생명을 당신은 마련.. 좋아하는 詩 2014.09.27
자동판매기 - 최승호 * 자동판매기 - 최승호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닌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 좋아하는 詩 2014.09.27
문 열어라 - 허형만 * 문 열어라 - 허형만 산 설고 물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제치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꼬박 뜬눈으로 날을 샌 후 문 열어라 아버님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좋아하는 詩 2014.09.27
능금 - 김기림 * 능금 - 김기림 심장을 잃어버린 토끼는 지금 어디 가서 마른 풀을 베고 낮잠을 잘까? * * 어, 석류가 익었네 - 정유화 석류네 집 창문이 열리자 알알이 영글은 석류알들의 눈빛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윤기가 반들반들하게 빛나던지 그 눈망울 보기 위해 나.. 좋아하는 詩 2014.09.26
새떼를 베끼다 - 위선환 * 새떼를 베끼다 - 위선환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좋아하는 詩 2014.09.26
행복한 짝사랑 - 문향란 * 행복한 짝사랑 - 문향란 알까요? 알 리가 없죠 관심이 가는 쪽은 늘 이쪽이고 당신은 내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언제나 애태우며 사랑하는 건 이쪽이고 당신은 늘 행복한 웃음으로 타인들의 사랑을 받으니까요 알까요? 알 리가 없죠 당신 앞에 서고 싶은 건 이쪽이고 오직 당신.. 좋아하는 詩 201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