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 좋아하는 詩 2015.02.27
자작령 - 이문재 * 자작령 - 이문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을 크게 틀어놓고 오월 초순에서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자작나무가 촘촘하대서 고개 이름이 자작령 자작령 영마루에 먼저 가 있으려는 것이다. 강 한 가운데를 따라 그어진 도계(道界)를 넘을 때 간밤 어금니 빠진 꿈을 잠들기 이전으로 던져버.. 좋아하는 詩 2015.02.27
우리 살던 옛집 지붕 - 이문재 * 우리 살던 옛집 지붕 - 이문재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 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 좋아하는 詩 2015.02.26
꽃구경 - 차승호 * 꽃구경 - 차승호 하동 매화마을 꽃 좋다는 소문 당진 땅 세류리 늙은이들 귀에까지 들어가 한식과 곡우 사이 관광버스 대절하여 꽃구경 간다 명절날 때때옷 장만하듯 점퍼도 사고 맘보바지도 사고 돼지고기 두어 관 수육도 하고 트랙터 몰던 구닥다리 선글라스 챙겨 매화처럼 환한 얼굴.. 좋아하는 詩 2015.02.10
복수초 - 노영임 * 복수초 - 노영임 누이야, 울 엄마는 언제 오나 어디 오나 호~호~ 입김 불어 동생 언 손 녹여줄 때 동동동 발 구른 자리 빙 둘러 눈물 고여 복수초 고 어린 것도 눈밭 뚫고 나오자면 제 몸의 호흡으로 열기를 만든단다 저것 봐 테를 빙 둘러 물방울 맺히잖아 * * 겨울에게 복수(復讐)하다 - 김.. 좋아하는 詩 2015.02.02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 좋아하는 詩 2015.01.31
고향길 - 신경림 * 고향길 - 신경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 좋아하는 詩 2015.01.28
당신의 날씨 - 김근 * 당신의 날씨 - 김근 돌아누운 뒤통수 점점 커다래지는 그늘 그 그늘 안으로 손을 뻗다 뻗다 닿을 수는 전혀 없어 나 또한 돌아누운 적 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출 수 없어 나 또한 그만 눈 감은 적 있다 멀리 세월을 에돌아 어디서 차고 매운 바람 냄새 훅 끼쳐올 때 낡은 거울의 먼지 얼룩.. 좋아하는 詩 2015.01.20
흰 눈 내리는 밤 - 황인숙 * 흰 눈 내리는 밤 - 황인숙 이것은 순수한 현재. 가득 차오르는 이것은 순수한 현재의 입김. 시선의 집중 포화. 거침없는 손길. 흠뻑 고요하고 흠뻑 눈부신 네 꿈속에 깃든 나의 꿈. 우리는 하얀 천국. 보이니? 눈 오는 숲은 일요일이다. 영원히 계속될 듯. 하지만 마침내 그칠 것이다. 그때 .. 좋아하는 詩 2014.12.15
풍경의 깊이 - 김사인 * 풍경의 깊이 -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 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 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 좋아하는 詩 201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