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신용목 * 나비 - 신용목 건넛집 마당에 자란 감나무 그림자가 골목 가득 촘촘히 거미줄을 치고 있다 허공에 저 검은 실을 뽑은 이는 달빛인데 겨울밤 낙엽 우는 외진 뒷길에 누구를 매달려는 숨죽인 고요 기다림인가 섶 기운 보따리로 홀아비 자식을 다니러 오는 다 늙은 어미를 노리나 끈 풀린 .. 좋아하는 詩 2014.11.25
정전 - 윤재철 * 정전 - 윤재철 교무실이 갑자기 정전이 되고 컴퓨터가 모두 꺼지니 금방 전기가 다시 들어오려나 얼마쯤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선생님들이 하나둘 일어서더니 서로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더러는 손발 움직이며 맨손체조도 하고 그러고는 미안한 듯이 컴퓨터 때문에 대화가 .. 좋아하는 詩 2014.11.24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 신경림 *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 신경림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더불어 숨 쉬고 사는 모든 것을 위하여 내 터를 아름답게 만들겠다 죽어간 것들을 위하여 이 땅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것들을 위하여 땅속에서 깊고 넓게 숨어 있는 것들을 위하여 언젠가 힘차게 솟아.. 좋아하는 詩 2014.11.04
황락(黃落) - 김종길 * 황락(黃落) - 김종길 추분(秋分)이 지나자, 아침 저녁은 한결 서늘해지고, 내 뜰 한 귀퉁이 자그마한 연못에서는 연밤이 두어 개 고개 숙이고, 널따란 연잎들이 누렇게 말라 쪼그라든다. 내 뜰의 황락을 눈여겨 살피면서, 나는 문득 쓸쓸해진다. 나 자신이 바로 황락의 처지에 놓여 있질 .. 좋아하는 詩 2014.11.02
칸나 - 이윤학 * 칸나 - 이윤학 숭례초등학교 정문 쪽 담 밑에는 오늘도 세 그루 칸나가 그을음 없는 불을 밝히고 있다. 며칠씩 장맛비 내리고 칸나 불은 붉고 끝이 뾰족해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새싹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장맛비 내리기 전에 몇 달 동안,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광목 잡곡 자.. 좋아하는 詩 2014.10.31
늦가을 감나무 - 함민복 * 늦가을 감나무 - 함민복 저거 좀 봐 밝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나무를 들고 있는 것 같네 사뿐, 들고 있는 것 같어 대롱대롱 들고 있는 것 같지 그러라고 잎도 졌나봐 어! 구불구불한 가지들이 슬금슬금 펴지네 * * 함민복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좋아하는 詩 2014.10.20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 신석정 *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 신석정 성근 대숲이 하늘보다 맑아 댓잎마다 젖어드는 햇볕이 분수처럼 사뭇 푸르고 아라사의 숲에서 인도에서 조선의 하늘에서 알라스카에서 찬란하게도 슬픈 노래를 배워낸 바람이 대숲에 돌아들어 돌아드는 바람에 슬픈 바람에 나는 젖어 온몸이 젖어..... 좋아하는 詩 2014.10.18
그 속삭임 - 고은 * 그 속삭임 - 고은 비가 오다 책상 앞에 앉다 책상이 가만히 말하다 나는 일찍이 꽃이었고 잎이었다 줄기였다 나는 사막 저쪽 오아시스까지 뻗어간 땅속의 긴 뿌리였다 책상 위의 쇠토막이 말하다 나는 달밤에 혼자 울부짖는 늑대의 목젖이었다 비가 그치다 밖으로 나가다 흠뻑 젖은 풀.. 좋아하는 詩 2014.10.15
안개 - 기형도 * 안개 -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 좋아하는 詩 2014.10.11
대칭이 나를 안심시킨다 - 강신애 * 대칭이 나를 안심시킨다 - 강신애 어머니의 방과 나의 방은 쌀이랑 과일이랑* 가게를 중심으로 대칭이다 어머니는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딸의 불안을 감시하러 들락거리시고 나는 껍데기뿐인 생을 공글려 어머니의 불안을 보살피러 들락거린다 화투로 하루의 운을 떼보는 母와 신문 .. 좋아하는 詩 201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