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돔 - 이명수 * 붉은돔 - 이명수 회를 좋아하는 친구가 수조에서 펄떡이는 붉은돔 한 마리를 가리키며 저놈을 잡아 달란다 웬다트 부족 마을에선 사냥하기 전에 짐승에게 큰소리로 알린다 우리 집 식구가 다섯인데 노모는 병들어 신음하고 어린것들은 며칠째 굶었다, 짐승이 알아듣고 눈을 껌벅이면 .. 좋아하는 詩 2014.08.29
보석밭 - 성찬경 * 보석밭 - 성찬경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 좋아하는 詩 2014.08.27
가을에 - 서정주 * 가을에 - 서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低俗에 抗拒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설게도 빛나는 외로운 雁行 ㅡ이마와 가슴으로 .. 좋아하는 詩 2014.08.25
행복론 - 최영미 * 행복론 -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좋아하는 詩 2014.08.22
고향의 천정(天井) 1 - 이성선 * 귀를 씻다 ―山詩 2 - 이성선 산이 지나가다가 잠깐 물가에 앉아 귀를 씻는다 그 아래 엎드려 물을 마시니 입에서 산(山)향기가 난다 * * 고향의 천정(天井) - 이성선 밭둑에서 나는 바람과 놀고 할머니는 메밀밭에서 메밀을 꺾고 계셨습니다. 늦여름의 하늘빛이 메밀꽃 위에 빛나고 메밀꽃.. 좋아하는 詩 2014.08.08
낙타의 꿈 - 이문재 * 낙타의 꿈 - 이문재 그가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물을 버렸다 내가 물을 버렸을 때 물은 울며 빛을 잃었다 나무들이 그 자리에서 어두워지는 저녁 그는 나를 데리러 왔다 자욱한 노을을 헤치고 헤치고 오는 것이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어 나는 그 길의 마지막에서 그의 잔등이 되었다 오랫.. 좋아하는 詩 2014.08.07
순례 서(序) - 오규원 * 순례 서(序) - 오규원 1 들은 길을 모두 구부린다 도식주의자가 못 되는 이 들(平野)이 몸을 풀어 나도 길처럼 구부러진다 2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나를 멈춘 자리에 다시 웅크린 이슬로 여물게 한다 모든 길은 막막하고 어지럽다 그러나 고개를 넘.. 좋아하는 詩 2014.08.04
오래된 여행가방 - 김수영(金秀映) * 오래된 여행가방 - 김수영(金秀映) 스무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기자 한 달 만에.. 좋아하는 詩 2014.08.02
만금이 절창이다 - 문인수 * 만금이 절창이다 - 문인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 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저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는 것인지, 뻘이 빨아.. 좋아하는 詩 2014.07.20
풀리는 한강(漢江) 가에서 - 서정주 * 풀리는 漢江 가에서 - 서정주 江물이 풀리다니 江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江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江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 좋아하는 詩 201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