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가 없다 - 문태준 * 측백나무가 없다 - 문태준 측백나무 곁에 서 있었다 참새 떼가 모래알 같은 자잘한 소리로 측백나무에서 운다 그러나 참새 떼는 측백나무 가지에만 앉지는 않는다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참새 떼는 나의 한 장의 白紙에 깨알 같은 울음을 쏟아놓고 감씨를 쏟아놓고 허공 한 촉을 물고 그 .. 좋아하는 詩 2013.09.28
시인의 말 - 신영배 * 시인의 말 - 신영배 사라지는 시를 쓰고 싶다 눈길을 걷다가 돌아보면 사라진 발자국 같은 봄비에 발끝을 내려다보면 떠내려간 꽃잎 같은 전복되는 차 속에서 붕 떠오른 시인의 말 같은 그런 시 사라지는 시 쓰다가 내가 사라지는 시 쓰다가 시만 남고 내가 사라지는 시 내가 사라지고 .. 좋아하는 詩 2013.09.28
님은 주무시고 - 서정주 * 님은 주무시고 - 서정주 님은 주무시고, 나는 그의 베갯모에 하이옇게 수(繡)놓여 날으는 한 마리의 학(鶴)이다. 그의 꿈속의 붉은 보석(寶石)들은 그의 꿈속의 바다 속으로 하나하나 떨어져 내리어 가라앉고 한 보석(寶石)이 거기 가라앉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 이별을 갖는다. 님이 자.. 좋아하는 詩 2013.09.25
남행시초(南行詩抄) - 백석 * 남행시초(南行詩抄) 1 -창원도(昌原道) - 백석 솔포기에 숨었다 토끼나 꿩을 놀래 주고 싶은 산허리의 길은 엎데서 따스하니 손 녹이고 싶은 길이다 개 데리고 호이호이 휘파람 불며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괴나리봇짐 벗고 땅불 놓고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길이다 승냥이 줄.. 좋아하는 詩 2013.09.02
극치 - 고영민 * 극치 - 고영민 개미가 흙을 물어와 하루 종일 둑방을 쌓는 것 금낭화가 핀 마당가에 비스듬히 서보는 것 소가 제 자리의 띠풀을 모두 먹어 길게 몇 번을 우는 것 작은 다락방에 쥐가 끓는 것 늙은 소나무 밑에 마른 솔잎이 층층 녹슨 머리핀처럼 노랗게 쌓여 있는 것 마당에 한 무리 잠자.. 좋아하는 詩 2013.09.02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잘랄루딘 루미 *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잘랄루딘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 *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좋아하는 詩 2013.09.01
꽃사과 꽃 피었다 - 황인숙 * 꽃사과 꽃이 피었다 - 황인숙 꽃사과 꽃 피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눈을 치켜들자 떨어지던 꽃사과 꽃 도로 튀어오른다. 바람도 미미한데 불같이 일어난다. 희디흰 불꽃이다. 꽃사과 꽃, 꽃사과 꽃. 눈으로 코로 달려든다. 나는 팔을 뻗었다. 나는 불이 붙었다. 공기가 갈라졌다. 하! 하! 하.. 좋아하는 詩 2013.08.29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 좋아하는 詩 2013.08.19
행복 - 이정록 * 행복 - 이정록 편지봉투의 소원은 입에 풀칠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사나흘 쫄쫄 굶을 글자들아 숨 멈추지 마라, 풀칠하는 순간 까치복어처럼 큰 숨 들이마시는 것이다 한 그릇의 공깃밥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풀 마른 그 입술마저 뜯겨버리는 것이다 그대 눈빛과 맞닥뜨리는 것.. 좋아하는 詩 2013.08.19
장자(莊子) - 고형렬 * 장자(莊子) - 고형렬 바다 속에는 화채봉(華彩峯)이 있다. 바다를 들면 같이 늙어가는 소년을 만난다. 비가 오다가 금색 노을이 가득한 화채봉, 밀랍향기 아득히 해가 진다. 바다 속에는 해가 지는 집이 있다. 산호숲을 지나서 어머님 고운 관(棺)의 물결무늬 그리는 그곳에서 파도치는 아.. 좋아하는 詩 2013.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