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첫눈 오던 날 - 최영미 * 북한산에 첫눈 오던 날 - 최영미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겨울이 가을을 덮친다 울긋불긋 위에 희끗희끗 층층이 무너지는 소리도 없이 죽음이 삶의 마지막 몸부림 위에 내려앉는 아침 네가 지키려 한 여름이, 가을이,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가는구나 내일이면 더 순수해질 단풍의 붉은 피.. 좋아하는 詩 2009.11.23
아침 송(頌) -떠남·86 - 유자효 * 아침 송(頌) - 떠남·86 - 유자효 자작나무 잎은 푸른 숨을 내뿜으며 달리는 마차를 휘감는다 보라 젊음은 넘쳐나는 생명으로 용솟음치고 오솔길은 긴 미래를 향하여 굽어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 좋아하는 詩 2009.11.16
입설단비(立雪斷臂) - 김선우 * 입설단비(立雪斷臂) - 김선우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 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 좋아하는 詩 2009.11.16
별의 각질 - 이병률 * 별의 각질 - 이병률 애초 내가 맡은 일은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도화지에 옮겨 그리는 일이었다 부러진 이 가지 끝에 잎이 달렸을까 이 기와 끝에 매달린 것이 하늘이었을까 하루 이틀 상상하는 일을 마치고 처음 한 일은 붓으로 벽을 터는 일이었다 벽에다 말을 걸듯 천.. 좋아하는 詩 2009.11.16
살그머니 - 강은교 * 살그머니 - 강은교 비 한 방울 또르르르 나뭇잎의 푸른 옷 속으로 살그머니 들어가네 나뭇잎의 푸른 웃도리가 살그머니 열리네 나뭇잎의 푸른 브롯치도 살그머니 열리네 나뭇잎의 푸른 스카프도 살그머니 열리네 나뭇잎의 푸른 가슴호주머니도 살그머니 열리네 햇빛 한 자락 소올소올 .. 좋아하는 詩 2009.11.16
늦가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 늦가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늦가을을 제일로 숨겨놓은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살아도 살아갈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과일을 다 가져가고 비로소 그 다음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혼자서 다 바라보는 저곳이 영리가 사는 곳 살아도 못 살아본 곳은 .. 좋아하는 詩 2009.11.16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 배연일 *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 배연일 아카시아 향내처럼 5월 해거름의 실바람처럼 수은등 사이로 흩날리는 꽃보라처럼 일곱 빛깔 선연한 무지개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휘파람새의 결 고운 음률처럼 서산마루에 번지는 감빛 노을처럼 은밀히 열리는 꽃송이처럼 바다 위에 내리는 은.. 좋아하는 詩 2009.11.10
나뭇잎 나뭇잎 - 김은자 * 나뭇잎 나뭇잎 - 김은자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세상은 푸른 갈채인 줄 알았다 부산의 대신동 맨 처음 열린 바닷속에 남청색 물고기들로 뿔뿔이 달아나며, 달아나며 귀뜸하던 세상의 갈채 소리 나의 사랑을 만났을 때 그대 높은 바닷속으로 휘달렸다 희디흰 희열로 몸을 떨며 내려찍는 .. 좋아하는 詩 2009.11.10
석남사 단풍 - 최갑수 * 석남사 단풍 - 최갑수 단풍만 보다 왔습니다 당신은 없고요,나는 석남사 뒤뜰 바람에 쓸리는 단풍잎만 바라보다 하아,저것들이 꼭 내 마음만 같아야 어찌할 줄도 모르는 내 마음만 같아야 저물 무렵까지 나는 석남사 뒤뜰에 고인 늦가을처럼 아무 말도 못한 채 얼굴만 붉히다 단풍만 .. 좋아하는 詩 2009.11.10
장식론(裝飾論)1~4 - 홍윤숙 * 장식론(裝飾論)1 - 홍윤숙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우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 좋아하는 詩 2009.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