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도종환 * 섬 - 도종환 당신이 물결이었을 때 나는 언덕이라 했다 당신이 뭍으로 부는 따스한 바람이고자 했을 때 나는 까마득히 멈추어 선 벼랑이라 했다 어느 때 숨죽인 물살로 다가와 말없는 바위를 몰래몰래 건드려보기도 하다가 다만 용서하면서 되돌아 갔었노라 했다 언덕뿐인 뒷모습을 바.. 도종환* 2009.08.10
새벽별 - 도종환 * 초저녁 - 도종환 혼자서 바라보는 하늘에 초저녁 별이 하나 혼자서 걸어가는 길이 멀어 끝없는 바람 살아서 꼭 한번은 만날 것 같은 해거름에 떠오르는 먼 옛날 울며 헤진 그리운 사람 하나 * * 별 아래 서서 별 하나 흐르다 머리 위에 머뭅니다 나도 따라 흐르다 별 아래에 섭니다 이렇게 .. 도종환* 2009.08.10
해인으로 가는 길 - 도종환 * 해인으로 가는 길 - 도종환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다 해인으로 가는 길에 물소리 좋아 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 그래도 신을 벗고 바람이 나뭇잎과 쌓은 중중연기 그 질긴 업을 풀었다 맺었다 하는 소리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지난 몇십 년.. 도종환* 2009.07.31
목백일홍 - 도종환 * 목백일홍 -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러워지는 꽃 같은 사.. 도종환* 2009.07.23
저녁 무렵 - 도종환 * 저녁 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등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 도종환* 2009.07.08
꽃씨를 거두며 - 도종환 * 꽃씨를 거두며 - 도종환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 도종환* 2009.07.08
매미 - 도종환 * 매미 - 도종환 누구에게나 자기 생의 치열하던 날이 있다 제 몸을 던져 뜨겁게 외치던 소리 소리의 몸짓이 저를 둘러싼 세계를 서늘하게 하던 날이 있다 강렬한 목소리로 살아 있기 위해 굼벵이처럼 견디며 보낸 캄캄한 세월 있고 그 소리 끝나기도 전에 문득 가을은 다가와 형상의 껍질.. 도종환* 2009.07.08
인차리 1~7 - 도종환 * 인차리 1 - 도종환 돌아가라 돌아가라고 바람이 분다 우리 사는 한평생 눈물겹게 사랑하여 아름다운 꽃잎 몇 개 피우기도 하고 끌어안는 것마다 싱싱한 풀잎 되어 뼈마디 가슴 가득 죄어오는 날도 있으리라 새떼보다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하고 더욱 어두운 곳으로 낙엽처럼 뿔뿔이 .. 도종환* 2009.07.08
내 안의 시인 - 도종환 * 내 안의 시인 - 도종환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줄 몰라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빚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 도종환* 2009.07.03
나무 - 도종환 * 나무 - 도종환 퍼붓는 빗발을 끝까지 다 맞고 난 나무들은 아름답다 밤새 제 눈물로 제 몸을 씻고 해 뜨는 쪽으로 조용히 고개를 드는 사람처럼 슬픔 속에 고요하다 바람과 눈보라를 안고 서 있는 나무들은 아름답다 고통으로 제 살에 다가오는 것들을 아름답게 바꿀 줄 아는 지.. 도종환* 200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