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 도종환 * 우체통 - 도종환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 강가에는 키가 작은 빠알간 우체통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섶다리를 건너갔다 건너오며 사랑이 익어가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하늘을 넘어 남자의 편지가 가고 저녁 물소리로 잠든 창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답장이 밤마다 강을 건너가는 것을 우체통.. 도종환* 2009.09.22
가을 오후 - 도종환 * 가을 오후 - 도종환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 도종환* 2009.09.22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 도종환 *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 도종환 내 삶의 자락에서 아름다운 당신을 만나 참 행복합니다 푸근한 모습으로 향기를 품고 신비로운 색깔로 사랑의 느낌을 물씬 풍겨주는 당신 이제는 멀어질 수 없는 연인이 된 것 같습니다 드넓은 하늘 속에 담긴 당신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행.. 도종환* 2009.09.07
황홀한 결별 - 도종환 * 황홀한 결별 - 도종환 이 세상에서 가장 샛노란 잎 한 장씩 내려 지붕의 반쪽을 덮고 나머지 반은 당신 가실 길에 깔아놓는 은행나무에게 누가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긋는 음표의 곡선들을 모아 오선지에 오려붙이며 당신을 생각했지요 가장 황홀할 .. 도종환* 2009.08.20
무심천 - 도종환 * 무심천 - 도종환 한 세상 사는 동안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욕심이라서 인연이라서 그 끈 떨쳐버릴 수 없어 괴로울 때 이 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게 흐르고 흘러 물의 끝에서 문득 노을이 앞을 막아서는 저물 무렵 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 도종환* 2009.08.20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 도종환 *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저녁 햇살 등에 지고 반짝이는 억새풀은 가을 들판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차가워지는 바람에 꽃손을 비비며 옹기종기 모여 떠는 둘국화나 구절초는 고갯길 언덕 아래에 있을 때에 더욱 청초하다 골목길의 가로등, 갈림길의 이정표처럼 있어.. 도종환* 2009.08.10
오늘 밤 비 내리고 - 도종환 * 오늘 밤 비 내리고 - 도종환 오늘 밤 비 내리고 몸 어디인가 소리없이 아프다 빗물은 꽃잎을 싣고 여울로 가고 세월은 육신을 싣고 서천으로 기운다 꽃 지고 세월 지면 또 무엇이 남으리 비 내리는 밤에는 마음 기댈 곳 없어라 * * 도종환 시집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문학동네 도종환* 2009.08.10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 도종환 *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장미꽃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 오는 달디단 향기 겉꽃잎과 속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매혹적인 자태 장미는 가장 많이 사랑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 도종환* 2009.08.10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 도종환* 2009.08.10
새벽 초당 - 도종환 * 새벽 초당 - 도종환 초당에 눈이 내립니다 달 없는 산길을 걸어 새벽의 초당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오래된 실의와 편력과 좌절도 저를 따라 밤길을 걸어오느라 지치고 허기진 얼굴로 섬돌 옆에 앉았습니다 선생님,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릉의 나라는 없고 지상의 날들만이 .. 도종환* 2009.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