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꽃 시 모음

효림♡ 2008. 12. 8. 08:28

            

*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민음사  

 

* 꽃 - 김동리  

우리의 한숨 하나 하나

눈물 방울 하나 하나

노래 하나 하나

그것은 모두 가서 맺어지리라 

 

가파른 언덕 위에 꽃이 핀다..... 

 

우리의 목숨은 갈 데가 있다

게으른 나비처럼 봄볕에 졸고 있을지라도

시위 떠난 화살은 과녁을 향해 가는 것을 

 

우리의 목숨 하나하나

노래 하나 하나

눈물 방울 하나 하나

그것은 모두 가서 맺어지리라 

 

극락과 지옥이 신선한 과일 함께

식탁 위에 놓인 정오

 

아아 까마득하게 쳐다보이는, 저 멀리

절벽 위에 핀 꽃이여. *

* 정지영의 내가 사랑하는 시[마음이 예뻐지는 시]-나무생각

 

* 꽃 - 서정주

꽃아.

저 거지 고아(孤兒)들이

달달달 떨다 간

원혼을 헤치고,

그보다도 더 으시시한

그 사이의 거간꾼

왕초며

건달이며

꼭두각시들의 원혼의 넝마들을 헤치고,

새로 생긴 애기의

누더기 강보(襁褓) 옆에

첫국밥 미역국 내음새 속에

피어나는

꽃아.

쏟아져 내리는

기총소사(機銃掃射) 때의

탄환들같이

벽(壁)도

인육(人肉)도

뼈다귀도

가리지 않고 꿰뚫어 내리는

꽃아.

꽃아.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정음사

 

* 꽃 - 기형도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 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밤 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

 

* 꽃 - 박두진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

 

* 꽃 - 김진경 

이 나라엔 떠도는 혼들도 많아

누구를 찾아다니는 건지

밤마다 허공의 길이

밝혀든 초롱불로 가득하지

 

밤새 찾아도 못 찾은 이가

지나가다 혹시 볼까

새벽이면

길가에

그 초롱불 걸어두는데

 

혹시 그이를 본 적 있나요?

본 적 있나요?
있나요?
요?

그 누군가를 찾아
밤새 허공의 길을 떠돌던 일도
까마득히 다 잊어버리고
꿀벌이 닝닝대는

생(生)의
슬픈 한낮. *

 

* 꽃 - 정호승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 꽃 - 안도현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

이것은 터뜨리지 않으면 곪아 썩는 못난 상처를

바로 너에게 보내는 일이다

꽃이 허공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다 꽃대는

꽃을 피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든다

사랑이여,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 *

 

* 꽃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로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 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 
 

* 함민복시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 꽃 - 김사인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

* 김사인시집[가만히 좋아하는]-창비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형도 시 모음  (0) 2008.12.24
노천명 시 모음  (0) 2008.12.09
김현승 시 모음  (0) 2008.11.28
김동명 시 모음  (0) 2008.10.22
한용운 시 모음  (0) 2008.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