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선화(水仙花) - 김동명
그대는 차디찬 의지(意志)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孤獨)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 곳 없는 정열(情熱)을
가슴 깊이 감추이고
찬 바람에 빙그레 웃는 적막(寂幕)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神)의 창작집(創作集)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不滅)의 소곡(小曲).
또한 나의 적은 애인(愛人)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水仙花)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
* 내 마음은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
* 파초(芭蕉)
조국(祖國)을 언제 떠났노,
파초(芭蕉)의 꿈은 가련(可憐)하다.
남국(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鄕愁),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情熱)의 여인(女人),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들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
* 하늘같은 사랑
나는 그대에게 하늘같은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그대가 힘들 때마다 맘놓고 나를 찾아와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그대를 지켜주는
그대의 그리움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하늘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씩씩하게 잘 살아가다가 혹시라도 그러면 안되겠지만
정말 어쩌다가 혹시라도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면
그럴 땐 내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그대를 바라보고 있노라고
고개 떨굼 대신 나를 보아 달라고
그렇게 나는 한자리에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나는 그대에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하늘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대 향한 맘이 벅차 오른다고 하여도
나는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언젠가 내게로 고개를 돌려주는 그 날에
나는 그제서야 환한 미소로 그대를 반겨 줄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대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그러나 나는 마음을 열지 않는 그대에게 지금 나를 보아 달라고
내가 지금 그대 곁에 있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지금 그 누구보다 그대의 행복을 바라며 * 밤 밤은 * 백설부 * 김동명(金東鳴)시인 -1900~1968 강원도 명주 사람 -1923년 [개벽]에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 등단 -시집 [나의 거문도][하늘]...
단지 하늘같은 사랑으로 그대를 기다리는 까닭입니다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
눈이 나린다
눈이 날린다
눈이 쌓인다
눈 속에 태고가 있다
눈 속에 오막살이가 있다
눈 속에 내 어린 시절이 있다
눈을 맞으며 길을 걷고 싶다
눈을 맞으며 날이 저물고 싶다
눈을 털며 주막에 들고 싶다
눈같이 흰 마음을 생각한다
눈같이 찬 님을 생각한다
눈같이 슨 청춘을 생각한다
눈은 내 옛 이야기의 시작
눈은 내 옛 사랑의 모습
눈은 내 옛 마음의 향수
눈이 나린다
눈이 날린다
눈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