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효림♡ 2009. 1. 20. 08:30

*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

 

*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 정호승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비가 온다

어머니의 늙은 젖꼭지를 만지며 바람이 분다

비는 하루 종일 그쳤다가 절벽 위에 희디흰 뿌리를 내리고

바람은 평생 동안 불다가 드디어 풀잎위에 고요히 절벽을 올려놓는다.

나는 배고픈 달팽이처럼 느리게 어머니 젖가슴 위로 기어 올라가 운다.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를 천만번 죽이는 것 과 같은 고통스러웠으나

때로는 실패한 사랑도 아름다움을 남긴다.

사랑에 실패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늙은 젖가슴

장마비에 떠내려간 무덤 같은 젖꽃판에 얼굴을 묻고

나는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뿌리에 흐르는 빗소리가 되어

절벽 위에 부는 바람이 되어

나 자신의 적인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증오인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다. 

 

* 어머니의 못 - 정일근 
교회에 다니는 작은 이모는
예수가 사람의 죄를 대신해
못 박혀 죽었다는 그 대목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느낀다
어머니에게 전도하러 왔다가
언니는 사람들을 위해
못 박혀 죽을 수 있나, 며
함께 교회에 나가 회개하자, 며
어머니의 못 박힌 손을 잡는다
어머니가 못 박혀 살고 있는지
작은 이모는 아직 모른다
시를 쓴다며 벌써 여러 해
직장도 없이 놀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이며
툭하면 머리가 아파 자리에 눕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나는 삐뚤어진 마루판 한 짝이어서
그 마루판 반듯하게 만들려고
삐걱 소리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스스로 못을 치셨다
그 못들 어머니에게 박혀 있으니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당일 하시는
어머니의 손에도 그 못 박혀 있고
시장 바닥으로 하루 종일 종종걸음치는
어머니의 발바닥에도 그 못 박혀 있다
못 박혀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처럼
어머니 못 박혀 살고 있다
평생을 자식이라는 못에 박혀
우리 어머니 피 흘리며 살고 있다

 

*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어머니날에 - 이성부 

어머니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면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항상 무엇을
없음에 절실할 때에야
그 참모습 알게 되듯이.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
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선영히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 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 어머니의 편지 - 문정희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 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도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 찬밥 - 문정희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

* 문정희시집[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ㅡ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 그믐달 - 천양희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산(山)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진 어머니.

 

* 어머니에 대한 고백 - 복효근

때 절은 몸빼 바지가 부끄러워

아줌마라고 부를 뻔했던 그 어머니가

뼈 속 절절히 아름다웠다고 느낀 것은

내가 내 딸에게

아저씨라고 불리워지지는 않을까 두려워질 무렵이었다 *

* 복효근시집[새에 대한 반성문]-시와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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