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모닥불 - 백석

효림♡ 2009. 1. 13. 08:19

* 모닥불 -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쭉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갓신창: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개의 이빨.

재당: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새사돈 

붓장사:붓을 파는 장사꾼

몽둥발이: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 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엔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

 

가즈랑집:'가즈랑'은 고개 이름. '가즈랑집'은 할머니의 택호

쇠메:쇠로 된 메. 묵직한 쇠토막에 구멍을 뚫고 자루를 박음

깽제미:꽹과리

막써레기:거칠게 썬 엽연초

섬돌:토방돌

구신집:귀신이 있는 집. 무당집

구신간시렁:걸립(乞粒) 귀신을 모셔놓은 시렁. 집집마다 대청 도리 위 한구석에 조그마한 널빤지로 선반을 매고 위하였음

당즈깨:뚜껑이 있는 바구니로 '당세기' 라고도 함

수영:수양(收養). 데려다 기른 딸이나 아들

신장님 단련:귀신에게 받는다는 시달림

아르대즘퍼리:'아래쪽에 있는 진창으로 된 펄'이라는 뜻의 평안도식 지명

제비꼬리: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마타리:마타리과의 다년초.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임

쇠조지: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가지취:참취나물. 산나물의 한 가지

고비:식용 산나물의 한 종류

물구지우림:물구지(무릇)의 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

둥굴레우림:둥굴레풀의 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을 계속해서 삶은 것

광살구:너무 익어 저절로 떨어지게 된 살구

 

* 북방(北方)에서 - 정현웅(鄭玄雄)에게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夫餘)를 숙신(肅愼)을 발해(渤海)를 여진(女眞)을 요(遙)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 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 ㅡ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흥안령(興安嶺):중국 동북지방의 대흥안령과 소흥안령을 아울러 일컬음

음산(陰山):음지산맥 부근의 지역

아무우르(Amur):흑룡강 주변의 지역

숭가리(Sungair):송화강. 중국 만주에 있는 큰 강.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흘러

                              눈강과 합류하여 흑룡강으로 빠짐.

장풍:창포. 뿌리는 한약으로 쓰임

오로촌:만주의 유목민족. 매우 예절 바른 민족으로 한국인과 유사함

멧돌:멧돼지

쏠론(Solon):남방 퉁구스족의 일파. 아무르강의 남방에 분포함

돌비:돌로 된 비석

 

* 백석시집-백시나역[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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