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에게 묻다 - 이정하
밤이면 나는 별에게 묻습니다
사랑은 과연 그대처럼 멀리 있는 것인가요
내 가슴 속에 별빛이란 별빛은 다 부어놓고
그리움이란 그리움은 다 일으켜놓고
당신은 그렇게
멀리서
멀리서
무심히만 있는 겁니까
* 찔레에게
아무 기별하지 말자
그리움만으로 한 세상 살아가면서도
저렇게 표독스런 꽃 피울 수 있는 것을
비 내린다 찔레여, 비가 내린다
난 무엇으로 네 삶 속에 스밀 수 있을까
할 말이 없다
내 너를 만나도 할 말이 없다
* 춘래불사춘(春來不思春)
봄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온 산과 들에 지천으로
봄꽃들이 피었다고 합니다
그대가 오지 않고선
나는 언제나 겨울입니다
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와도
그대가 오지 않는 한
나는 언제까지나 겨울입니다 *
* 이정하시집[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전당
* 나무와 잎새
떨어지는 잎새에게
손 한 번 흔들어 주지 않았다
나무는 아는게다
새로운 삶과 악수하자면
미련없이 떨궈 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 길
함께 가고 싶지만
당신은 언제나 저만치 가고 없습니다
가만히 손을 흔들다
나는 까닭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 안부
가을이 채 가기도 전에
설악산 대청봉에는 벌써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올 가을에는 단풍잎 한 번 못 보고 지나갈 것 같군요...
그대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그냥 그렇게 지나갈 것 같군요...
사랑하는 당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하기를...
* 기다리는 이유
기다리는 이유를 묻지 마라
너는 왜 사는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도
나는 무척 설레였던 것을...
산다는 것은
이렇게 슬픔을 녹여가는 것이구나...
* 비
그대 소나기 같은 사람이여
슬쩍 지나쳐 놓고 다른 데 가 있으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몸은 흠뻑 젖었는데
그대 가랑비 같은 사람이여
오지 않는 듯 다가와 모른 척하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마음까지 다 젖었는데....
* 갑자기 눈물이 나는 때가 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다. 따지
고 보면 별일도 아닌 것에 울컥 목이 메어오는 때가 있는
것이다. 늘 내 눈물의 진원지였던 그대.
그대 내게 없음이 이리도 서러운가. 덜려고 애를 써도
한 줌도 덜어낼 수 없는 내 슬픔의 근원이여, 대체 언제까
지 당신에게 매여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이젠 잊었겠지 했
는데도 시시각각 더운 눈물로 다가오는 걸 보니 내가 당신
을 사랑하긴 했었나 보다. 뜨겁게 사랑하긴 했었나 보다 *
* 이정하시집[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전당
* 살아 있다는 것
바람 불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들꽃은 저 혼자 흔들린다
누구 하나 눈여겨보는 사람 없지만
제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떨리는 게다
그래도… 들꽃은 행복했다
왠지 모르게 행복했다
* 살아 있기 때문에
흔들린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프고, 살아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다.그렇다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로운 것은 살아 있음의 특권이 아니던가. 지금 내가 괴로워하는 이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겐 무지하게 갈망했던 시간인 것을.비록 슬프고 아프고 힘겹더라도 살아 있다는 것은 내게 무한한 축복이다. 살아 있음으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 또한 가질 수 있다는 것을
* 기다림, 혹은 절망수첩
오늘 오지 못한다면
다음에 오십시오
다음에도 오지 못한다면
그 다음에라도 오십시오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지루할 수가 없는 것은
바로 당신을 기다리기 때문이지요
행여 영영 올 수 없더라도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다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행복인 나에게
* 사랑의 우화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 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 때의 폭풍이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
*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시 하나 애절하게 쓰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고도 슬픈 시 하나를
그러나 불러보기만 해도 목메이는 어머니 이름
어머니, 하고 써놓고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
* 사랑의 이율배반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 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
* 이정하시집[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푸른숲,1994
* 거짓 웃음
당신은 아는가?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함이
내게는 더 큰 고통인 것을
당신은 나에게 위안을 주려
거짓 웃음을 짓지만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는
더욱 안타깝다는 것을
그대여, 언제나 그대 곁에는
아픔보다 더 큰 섬으로 내가 저물고 있다
* 별
그대가 매일 밤 떠오르는 건
머리가 아닌 내 가슴에 박혀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해요
* 별
밤이면 나는별에게 묻는다
사랑은 과연 그대처럼 멀리 있는 것인가
내 가슴 속에 별빛이란 별빛은 다 쏟아부어 놓고 그리움이란
그리움은 다 일으켜 놓고 그대는 진정 거기서 한 발짝도 내려오지
않긴가. 그렇게 싸늘하게 내려다보고만 있을 것인가
* 별
오랫동안 내 가슴에 담아 둔 말들은 밤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됩니다. 내가 그대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들, 그 안타까운
마음들이 모두 모여 서쪽 밤하늘에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되었다는 사실. 그대는 아마 모를 겁니다. 내가슴을 온통
타들어가게 만들어 놓고 멀리서만 빛나는 별 하나를
* 별
너에게 가지 못하고
나는 서성인다
내 목소리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이름이여
차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다만 보고 싶었다고만 말하는 그대여
그대는 정녕 한 발짝도
내게 내려오지 않긴가요 *
* 이정하시집[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전당
* 별 1
밤하늘엔 별이 있습니다
내 마음엔 당신이 있습니다
새벽이 되면 별은 집니다
그러나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당신은 아시나요?
그대를 만나고부터 내 마음 속엔
언제나 별 하나 빛나고 있습니다 *
* 이정하시집[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전당
* 별 2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그대에게 다가서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대를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대를 너무나 사랑해서임을 알아주십시오
오늘따라 저렇게 별빛이 유난스런 것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참고 또 참는
내 아픈 마음임을 헤아려 주십시오
* 별 3
그대여, 내가 그대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처럼
저 별은 이 밤 내내 홀로 반짝이고 있을 테지요
* 별 8
우리 서로 멀리 있기 때문에
더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 이렇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 그리운 겁니다
마주 보고 있으나
늘 내 안에서 서성이는 이여 *
* 이정하시집[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전당
* 약속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서 있겠습니다
낯선 기분이 들지 않도록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아두겠습니다
기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대는 그저
돌아오기만 하십시오
*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정호승님의 시 [부치지 않은 편지]를 읽고
그대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 이정하시집[혼자 사랑한다는 것은]-명예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