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모음 2

* 칭찬 - 신현득 

시골 담밑에

호박 포기

 

'잘 크네.'

'잘 크네.'

칭찬하면 잘 큰다

 

'쪼깬 놈이 벌써 덤블 벋는대이'

 시골말로 칭찬하면

 더 잘 큰다

 

* 우리산 우리강 - 윤석중 

북쪽으로 가면 백두산

남쪽으로 가면 한라산

우거진 수풀 바람 막아 주는

정다운 산, 우리 산

 

북쪽으로 가면 두만강

남쪽으로 가면 낙동강

큰 바다에서 반갑게들 만날

즐거운 강, 우리 강

 

* 이슬비 색시비 - 윤석중 

이슬비 색시비 부끄럼쟁이

소리 없이 몰래 내려오지요

 

이슬비 색시비 곱고 곱지요

빨강 꽃에 빨강 비 파랑 잎에 파랑 비

 

* 나무늘보 - 손동연 

"빨리 빨리 먹어."

"빨리 빨리 숙제해."

"빨리 빨리 심부름 다녀와."

엄마는 뭐든지 "빨리 빨리 ......"하라셔

 

나무늘보야

딱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우리 집에 좀 와 줘

울 엄마 가정 교사 좀 해 줘

 

그럼 금방

알게 될걸

내가 얼마나

동작이 빠른지 말이야

 

* 엄마 아빠 - 박경종 

우리 엄마 이름은 여보이구요 

우리 아빠 이름은 당신이래요 

여보 당신 부르기 아주 쉽지요 

여보 당신 듣기도 재미있지요 

그래도 우리는 부르지 못해 

엄마 아빠 둘이만 부른답니다

 

* 물뿌리개 하늘 - 김용섭 

봄비 오는 하늘은

물뿌리개지

 

땅속의 씨앗만큼

꼭 그 수만큼

 

갖가지 씨앗만큼

꼭 그 크기만큼

 

뚫린 물구멍

고른 물구멍

  

* 고마운 돌 - 김종상 

가재를 품어 주고

물고기를 숨겨 주고

 

징검돌도 되어 주고

빨랫돌도 되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냇물 속에 엎드려서

 

모두를 위해 주는 돌

참으로 고마운 돌

 

*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 이준관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손을 뻗으면 나무가 내 손을 잡아줘요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혼자 길을 가면 내 곁에

그림자가 함께 걸어가요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밤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나를 지켜봐요

 

* 사박사박 - 이준관  

두 그루 나무가 외따로

떨어져 서 있습니다

한 아이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까지

눈길을

만들며 가고 있습니다

애야, 뭐하니?

눈길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사박사박.....

두 나무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요

  

* 폭포 - 이진호  

한 가마씩 쏟는

저 하얀 웃음

누가 저렇듯 웃을 수 있을까?

산이 쪼개지듯 말입니다

 

한바탕 지르는

저 우렁찬 소리

누가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

산이 흔들리듯 말입니다

 

* 청소시간 - 최복형  

우당탕 퉁탕

달아나는 책상

좇아가는 걸상

 

싹싹 쓰는 빗자루

쓱쓱 닦는 걸레

춤추는 떨이개

 

쓸기도 대강대강

닦기도 대강대강

떨기도 대강대강

 

선생님 표정

힐끗힐끗 훔쳐보며

떠드는 청소시간

  

*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 오순태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혼자 서서 생각하는 나무

새가 날아와 가지에 똥을 누고 가도

바람이 잎을 마구 흔들어도

말없이 서서 하늘 향해 기도하는 나무

나무의 몸에 가만히 등을 기대면

따스한 체온이 묻어나는 것 같고

잎을 만지면 손은 온통

초록물이 드는 것 같은

나무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 아침산 - 권영세  

아기 산새

기지개 소리

 

잠 깬

아침 산

 

물기 젖은

얼굴

곱게 빗은

머릿결

 

아

누가

보내었을까?

하아얀 구름 목도리

 

* 초여름 - 조용원  

하늘과 산이 손잡고

초록 손수건 흔들고 있네요

 

강과 들판이 어깨 기대고

초록 꿈을 키우고 있네요

 

새들과 바람이 입 맞추고

보리밭에서 춤추며

사랑을 노래하네요 

 

* 봄 - 진호섭

밭두렁 논두렁이

질펀한 땀 줄줄 흘리면 

옷고름 풀리듯 풀려 간 겨울

그 자리에 왈칵 쏟아진 봄볕

마중 나온 아기풀들 

생글생글

파란 입술로 종알거려요

 

* 감자 - 민현숙  

올망졸망

감자 식구는 많기도 해

깜깜한 땅 속에서

하나라도 잃을까 봐

꼭꼭 손 잡았네

 

뿌리 맨 끝에 숨은

아기감자까지도

손 놓칠까

꼭 쥔 그 마음

 

땅 속의 일이라고

아무도 모를까

가득 찬 감자밭 웃음이

저렇게 꽃으로 피는걸

 

* 까치 - 강윤제  

하이야 모시 적삼

깜장 두루마기 눈이 시리도록 반가워라

 

뜻하심이 너무 높아

몸두는 곳

언제나 하늘 가까이

 

이른 새벽 집집마다 복조리를 던진다

 

* 농촌 아이의 달력 - 안도현
1월은 유리창에 낀 성에 긁는 달
2월은 저수지 얼음장 위에 돌 던지는 달
3월은 학교 담장 밑에서 햇볕 쬐는 달
4월은 앞산 진달래꽃 따 먹는 달
5월은 올챙이 뒷다리 나오는 것 지켜보는 달
6월은 아버지 종아리에 거머리가 붙는 달
7월은 매미 잡으러 감나무에 오르는 달
8월은 고추밭에 가기 싫은 달
9월은 방아깨비 허리 통통해지는 달
10월은 감나무 밑에서 홍시 조심해야 하는 달
11월은 엄마가 장롱에서 털장갑 꺼내는 달
12월은 눈사람 만들어 놓고 발로 한 번 차보는 달

 

* 순서 - 안도현  

맨 처음 마당 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밤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밭 울타리

탱자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 별똥 - 정지용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 날 가 보려

벼르다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 산 너머 저쪽 - 정지용

산 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

뻐꾸기 영 위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 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어 쩌 르 렁! 

산 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

늘 오던 바늘 장수도
이 봄 들며 아니 뵈네. *

 

* 개미 - 오순택

누가

까만 꽃씨를

뿌려 놓았구나

 

*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 오순택 

꽁지 몽땅한 새가 날아가면서

싼 똥

민들레 꽃잎에

똑ㅡ

떨어졌다

 

민들레 얼굴이 노래진다

 

새순을 뜯어먹고 있던

아기염소가

까르르 웃는다

 

* 징검돌 - 오순택

개울을 건널 때

등을 내어 준

돌이 아파할까 볼

나는 가만가만 밟고 갔어요

 

* 꽃을 보려면 - 박두순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 공식 - 박일

짝꿍의 슬픔은
나눠 갖기로
웃음은 더해주기로
고민은 빼주기로
아무튼 짝꿍을
곱셈처럼 좋아하기로

* 대숲 바람 - 박지현

대숲 바람은
언제 들어도
'쉬이' '쉬이'한다
아기 죽순
쑤욱 쑤욱
곱게
곧게 자라게
조용 조용 하란다

 

* 달팽이 - 권정생

색시 달팽이가

방귀 뀌어 놓고

 

누가 보았을까봐

누가 들었을까봐

 

모가지 기다랗게 늘이고는

요리조리 살피다가

아무도 없으니까

그 속에 쏘옥 들어가 잔다

 

* 전학 - 남호섭

  두고 온 친구들은

  신발장에 선발을 접어 넣으며

  내 하얀 운동화를 기억할까

  누군가는 내 빈 자리에

  자기 신발을 살짝 얹어 놓으며

  나를 기억해 줄까

 

  새 교실 새 신발장에는

  내 자리가 없다

  제일 끄트머리

  아무도 봐 주지 않는 자리에

  슬쩍 올려놓은 내 신발이

  잘못 찾아온 손님 같다

 

 * 연못 속 - 윤석중 

연못 속으로

사람이 거꾸로 걸어간다

소가 거꾸로 따라간다

나무가 거꾸로 쳐다본다

 

연못 속에는

새들이 고기처럼

헤엄쳐 다닌다

 

구름이 방석처럼 깔려 있다

해님이 모닥불처럼 피어 오른다

 

* 웃는 기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 이봉직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 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
 

  * 바보천사 - 김원석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좋아도 안 좋은 척
맛 있어도 맛 없는 척
엄마는 우리를 그렇게 그렇게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