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용택 시 모음 3

효림♡ 2009. 6. 24. 08:38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 김용택    
겨울은 봄바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요
봄은 세상에서 매미 소리가 제일 무섭대요

여름은 귀뚜라미 소리가 제일 무섭고요
가을 햇살은 눈송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대요 *

* 김용택글[콩, 너는 죽었다]-실천문학사

 

* 지구의 일  

해가 뜨고

달이 뜨고

꽃이 피고

새가 날고

잎이 피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살구가 노랗게 익어 가만히 두면

저절로 땅에 떨어져서 흙에 묻혀 썩고

그러면 거기 어린 살구나무가 또 태어나지

그 살구나무가 해와 바람과 물과 세상의 도움으로 자라서

또 살구가 열린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신기하니?

작은 새들이 마른 풀잎을 물어다가 가랑잎 뒤에

작고 예쁜 집을 짓고

알을 낳아 놓았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이니

다 지구의 일이야

그런 것들 다 지구의 일이고

지구의 일이 우리들의 일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이 지구의 일을 방해하면 안 돼 *

* 김용택글[콩, 너는 죽었다]-실천문학사

 

* 지구의 일
저기 저 가만가만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풀잎 한줄기가 그냥 흔들리는지 아냐
나도 풀잎처럼 아픔없이 휘고 싶다
온갖 것들 다 게워내고
햇살이 비치는 맑은 피로
나도 저렇게 부드럽고 연하게 가만가만
흔들리고 싶다
가만히 땅에 누워서 텅빈 하늘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싶다
저기 저 흔들거리는 상수리 나뭇잎 하나
땅 위에 바로 선 풀잎 한줄기가 그냥 흔들리는지 아냐
지구의 일이다 
 *

 

 * 편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말과

 당신의 글이

 다

 내 마음과

 내 말과

 나의 글입니다 

 

* 그 꽃 못 보오  

안 가고 보지 않아도

뒤안의 목단꽃은

내 발 아래 똑똑 떨어지는데

해 지고 산 그늘 내리면

차마 뒤안에 나는 못 가오

행여, 행여나

나 볼 때 꽃잎이라도

내 발 아래 뚝뚝 떨어진다면

참말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그 꽃 본다요

두 눈 뜨고 그 꽃 못 보오

그 꼴 나는 못 보오

 

* 워매, 속 탄 것
워매, 날씨 환장허게 좋아부네

날이 날마다 이렇게 날이 좋아불면
저기 저 남산에 봄바람 살 불어불도
저기 저 남산에 꽃 펴불겄는디
저기 저 남산에 꽃 펴불면은
바작바작 타는 봄잔디 같은 내 가슴
봄불 확 불어 활활 타겄는디
워매, 속 탄 것
워매워매 속 뜨건 것
저기 저 남산에
봄바람 불동말동허고
요내 가슴에는
불이 일듯말듯허니
워매, 속 탄 것

워매워매 속 뜨건 것

 

* 나도 꽃  

수천 수만 송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태며
나도 한송이 들국으로
그대 곁에
가만가만 핍니다
 

 

* 인생  

사람이, 사는 것이

별것인가요?

다 눈물의 굽이에서 울고 싶고

기쁨에 순간에 속절없이

뜀박질하고 싶은 것이지요


사랑이, 인생이 별것인가요?  

 

* 짧은 해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 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 그 나무  

꽃이 진다

새가 운다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왔는지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로 갈는지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사랑에는 길이 없다


나는 너에게 눈멀고

꽃이 지는

나무 아래에서 하루해가 저물었다

 

* 산도 물도  

당신 앞에 서면

산도 물도 꽃도

지워집니다

 

* 마을회관  

이월매조다

팔월공산이다

똥 안 먹고

뭐한다냐.

하루종일

80원 잃었다. *

 

* 하동 배꽃

긴가민가 아른아른 아른거리고 
간 지 온 지 한들한들 웃기만 하네.
흩날리는 한 점 꽃잎 잡아
강물 위에 어른어른 띄워놓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발 헛디디며 나는 왔네. *

 

* 스님이

길가에 두꺼비 한 마리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꺼비가 살며시 눈을 떴다가 도로 감아버립니다.

 

저놈, 무슨 큰 걱정이 있나? *

 

* 아이가

길가에 두꺼비 한 마리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꺼비가 끔뻑끔뻑 눈을 떴다 감았다 합니다.

 

야, 너 나 아냐? *

 

* 김용택시집[수양버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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