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운주사 시 모음

효림♡ 2009. 7. 2. 09:34

 

* 풍경달다 -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 운주사 - 고은

지지리도 못나

말 한마디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벗들이여 우리 새로 벗이 되자

우리가 밟은 땅 위에서

푸른 하늘이 되자

구름장 걷고

화순땅 운주사 마른 풀밭 위에서 *

 

* 운주사 밤하늘 - 박희진

운주사 와불이 숨을 들이쉬니 
별들이 초롱초롱 
운주사 와불이 숨을 내쉬니 
별들이 반짝반짝. *

* 구름바다 위 운주사(雲舟寺) - 황지우

비구름 끼인 날  

운주사(雲舟寺), 한 채 돛배가  

뿌연 연초록 화순(和順)으로 들어오네  

가랑이를 쩌억 벌리고 있는 포구(浦口)  

천불천탑이 천만 개의 돌등(燈)을 들고 나와 맞는다  

해도, 그게 다 마음 덩어리 아니겠어?  

마음은 돌 속에다가도 정(情)을 들게 하듯이  

구름돛 활짝 펴고 온 우주를 다 돌아다녀도  

정들 곳 다만 사람 마음이어서  

닻이 내려오는 이 진창

비구름 잔득 끼인 날  

산들은 아주 먼 섬들이었네 *

* 황지우시집[게 눈 속의 연꽃]-문지


* 산경(山經)을 덮으면서 - 황지우   

1 

적설 20cm가 덮은 운주사(雲舟寺),

뱃머리 하늘로 돌려놓고 얼어붙은 목선(木船) 한 척

내, 오늘 너를 깨부수러

오 함마 쇠뭉치 들고 왔다

해제, 해제다

이제 그만 약속을 풀자

내, 정(情)이 많아 세상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세상이 이 지경이니

봄이 이 썩은 배를

하늘로 다시 예인해가기 전

내가 지은, 그렇지만 작용하는 허구를

작파하여야겄다

 

2  

가슴을 치면

하늘의 운판(雲板)이 박자를 맞추는

그대 슬픔이 그리 큰가

적설 20cm,

얼음 이불 되어

와불 부부의 더 추운 동침을 덮어놓았네

쇼크로 까무라친 듯

15도 경사로 누워 있는 부처님들

석안(石眼)에 괸, 한 됫박 녹은 눈물을

사람 손으로 쓸어내었네

 

운주사 다녀오는 저녁

사람 발자국이 녹여놓은, 질척거리는

대인동 사창가로 간다

흔적을 지우려는 발이

더 큰 흔적을 남겨놓을지라도

오늘밤 진흙 이불을 덮고

진흙 덩이와 자고 싶다

 

넌 어디서 왔냐? *

* 황지우시집[게 눈 속의 연꽃]-문지


* 운주사 골짜기 - 문정희

화순 땅 운주사 골짜기에는

돌마다 모두 피가 돌아서

긴긴 해 머리에 이고 웃고 섰더라

하룻밤에 천 불 천 탑을 세우면

극락이 이루어진다는 서원에 따라

밤새도록 돌들이 일어섰는데

그래도 천 불 천 탑이 안 돼

해남 목포 보성 돌까지

우뚝우뚝 걸어와 미륵불로 섰는데

앗! 불사

새벽에 이미 첫닭이 울었다고

누군가 거짓말을 해 버려

모두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운주사 골짜기에는

뒹구느니 서원이오

채이느니 미륵들 ….

가득히 가득히 기다리고 서 있더라.

하여간 무언가를 기다리고 서 있더라.

 

* 운주사에 와서 - 정희성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눈 코 없는 돌부처들

마당 한가운데 서서

그냥 비를 맞고 있습니다

 

못난 제 얼굴에도

세차게 비를 뿌리소서 *

 

* 운주사 와불 - 임영조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 키 크고 마음 착한 미남 석공과 키 작지만 요염한 공주가 한가윗날 밤 우연히 서로 눈맞아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유부남 유부녀라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사랑이 날로 깊어질수록 한편 괴로워했다 허나 그들은 마침내 야반도주를 모의하고 배 한 척을 마련하려 백방으로 뛰었다 하늘도 그 애틋한 순애에 감복하여 이 세상 아닌 딴 세상에 가서 행복하게 살라고 구름배 한 척을 내려주었다

 

그들은 사랑에 부푼 돛을 올리고 세상 밖으로 밤낮없이 노를 저었다 그러다 비바람 몰아치던 칠석날 저녁 그들의 배는 북두칠성 모서리에 부딪쳐 화순군 도암 들녘에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육신과 배의 잔해는 땅에 떨어지면서 크고 작은 바위로 굳어 도처에 널려졌다 하늘은 덫으로 놓아둔 북두칠성에 좌초된 것을 못내 가엾게 여겨 칠석날 저녁이면 일곱별을 내려 곡하게 하고 비를 뿌렸다 그리고 천상의 석공들을 내려 보내 천일동안 밤도와 그들의 석상을 세우게 하고 배의 잔해로 천불천탑을 완성하라 명했다

 

드디어 완성된 석상을 막 세우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새벽닭이 울었다 그 소리에 놀란 석공들은 그만 서둘러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운주사 영구산 마루 양지녘에는 그 석공과 공주가 금실좋은 와불로 누워 세상 밖으로 갈 구름배 한 척 기다리고 있다 곧 나란히 일어날 듯 상체 약간 비스듬히 쳐든 채 지성도 지극하면 성불하는가?

 

 

* 운주사 천불천탑 - 이정록 
구름이
아름다운 건
폐허를 꿈꾸기 때문이다
끝내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석탑석불이 아름다운 건
그 구름을 닮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탑석불보다 아름다운 것은
탑을 받들고 있는 겹겹의 바위이다
해마다 한 층씩 마디를 늘여 가는
앞산 뒷산 소나무들이다 다년생
풀뿌리들이다
잔디밭으로 변해 버린
운주사 깊은 계곡
그중 아름다운 폐허는
그 잔디밭에 묻혀 버린 계단식 논밭이다
불탑을 둘러보는 동안 우리는
폐허에 안착한 논밭을 밟을 수밖에 없다
노도 없이 바다도 없이
배를 밀고 가는 구름을 우러를 수밖에 없다. *

* 이정록시집[제비꽃 여인숙]-민음사

 

* 화순 운주사 - 이병창

나를 부처라고 부르지 말라

천불천탑(千佛千塔)

그 하나가 부족하여 날 새버린

개벽의 꿈이 아쉽다고

말하지 말라

 

마지막 하나의 부처가

내 배꼽 위에 앉아있는

너 자신임을 알기까지는

화순 들녘의 땀 흘리는 중생들이

바로 내 자식들임을 알지 못하리라

 

나를 보고 미륵세상을 노래하지 말라

내 몸이 부서져 닳고 닳아도

여전히 한스러운 세상

나의 기다림은 멀다

 

나를 누워있는 부처라고 부르지 말라

나의 발끝에서 더 이상 절하지도 말라

너희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일어서지 않을 때

나는 돌이 되어 이렇게 꿈틀거리고 있다

 

이밤이 새기 전에 그대
일어서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
팔다리 잘려진 나의 용화 세상을
그대의 가슴 속에서 열어야 한다

 

* 운주사 돌부처 - 이창수

운주사 입구 산비탈 아래

문둥이 미륵불들 사이

눈, 코, 귀 없는 돌멩이들

서로 등 맞대고 있다

봄날이면 진달래 꽃사태

여름이면 녹음 우거진 바람소리

가을날 배롱나무 교태까지

태교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정란 같은 돌멩이 하나

미륵불들 틈에서

의젓하게 푸른 하늘 떠받들고 있다

와불이며 쌍배불좌상

먼 하늘의 도를 깨치는 동안에도

세상 온갖 것에 탯줄 대고

겨울 햇살 온몸으로 빨고 있다

 

* 운주사 와불 - 안상학

봄밤 내내 하늘이 비를 내려 두고 간 아침

선 채로 누운 석가모니불은 퉁퉁 눈이 부어 있었고

앉은 채로 누운 비로자나불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느 세월이 덥석 일으켜 세워도

일불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라 하고

일불은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을 거라 하며,

봄밤 내내 처음으로 손도 잡지 않고 내외했을 것이다.

  

간밤 내내 비를 맞으며 누군가

품고 품어도 합불이 되지 않는 한 여인을

한 여승으로 보내는 길을 따라 나는

일불의 눈물 마르기를 기다려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빛을 잃은 바위 별들이 성긴 길섶으로

연분홍 환한 봄날이 먼저 지나가는 길이었다.  

 

* 천년 동안의 사랑 - 이대흠  

처음으로 와보네,라는 그녀와

운주사에 갔네 빨리 온 찬바람에 말라 쪼그라진 나뭇잎들

잎들은 저마다 곱게 물들길 원했을 것이나

계절은 참혹한 운명을 선사하였네

그래도 끝끝내 제 상처를 다스려 가을을 물들인

감잎을 보며 그 감잎처럼 저물어가는 그녀에게

사랑을 말하진 못했네 노을 같은 측은함으로 나

그녀의 손을 잡았을 뿐 언제 지은 절인지

누가 지은 절인지 알 수가 없어

더 믿음이 가는 돌부처들 지나 와불 뵈러 가는 길

하필 머슴 부처가 뭐냐고 부처도 주인 있고 머슴 있냐고

우리는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렸네

나뭇잎 몇 덮고 누운 와불은 말이 없고

천년을 합궁하고 있는 와불을 보여주려

그녀의 손을 잡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때

나는 잠시 와불이 되어 그녀를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네

아주 잠깐의 천년 그녀는

부론 폐사지에서 보았다는 느티나무 이야기를 하였네

처음엔 너럭바위였다고 그러나 손톱으로 두드려보니

텅 터엉 목어가 되어 울더라고

천년 세월이란 나무가 돌이 되는 시간이라고 하였네

오래된 나무의 뿌리는 누군가의 속울음을 다 받아들여

그렇게 검어진 것이라고 쓴 적이 있네

그 뿌리 천년의 세월을 다 받아들이면

돌이 되겠지 저렇게 캄캄히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잎 내지 못하는 돌이 되겠지

나는 천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네

나무의 가지들처럼 엉킨 기억의 끝 어디쯤에

천년 전 기억이 맺혀있을 것인데  

가슴이 조금 뛰었을 뿐 그녀 얼굴이 아련했을 뿐

선명히 떠오르지 않았네

가파른 길을 걸으며 하이힐을 벗어버릴까 나를 보던 그녀

나는 그녀가 맨발로 돌아가는 게 두려워 그녀를 부축하였네

나 그녀와 맨발의 세월로 돌아가게 되었다면

어쩌면 운주, 그 배에서 내리지 못했을 것이네

나는 절인 배추처럼 젖은 목소리로 나이 듦과 건강과

가족의 안부 묻는 말 따위나 하였네

처음이 아닌 것 같네,라는 그녀와 운주사를 빠져나왔네

천년 전 우리가 나란히 누워 사람들의 시름에 캄캄해지면서

노을 같은 분홍 울음을 쏟아냈던 기억

천년 동안 합궁하며 세상의 쓸쓸함을 다 어루만지는

바람을 자식으로 두었다는 그 사실도 잊고

운주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네 *

* 이대흠시집[귀가 서럽다]-창비 

 

* 운주사 항아리탑 - 도종환 
몸 속에 진신사리를 모시지도 못했어요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장인의 솜씨로 다듬은
균형 잡힌 아름다움도 제겐 없어요
그저 항아리 모양의 돌 몇 개
얹어놓았을 뿐이에요 그러나
부처님은 잘 만들어진 화강암의 삼층
탑신 안에만 계시지 않고
쌀독 속에도 있고
물항아리 안에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땀 한 방울로 쌀 한 톨 키우는 다랭이논에도
있어야 하고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빈 쌀독 속에
우리 목숨보다 먼저 와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참으로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찰랑거리며
물항아리 속에 앉아 함께 젖어 있거나
된장독 맨 밑에서 깊고 오랜 맛으로
푹푹 썩어가며 섞여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산 계곡까지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산그늘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의 논 옆에
일하고 허리를 눕히는 바로 그 곁에
탑도 부처님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요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모습 친근한 표정으로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 운주사 - 함민복  

비 내려

와불의 눈에 빗물 고인다

내 아픔이 아닌

세상의 아픔에 젖을 수 있어

내리는 비도

눈물이구나

그렇게, 다 그렇게 되어

세상에

눈물의 강 흐르면

그 위를

마음 배들

구름처럼 평화롭게

떠갈 수 있다는 설법인가

북두칠성 낮게 끌어내린 뜻도 알 듯한

* 함민복시집[꽃봇대]-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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