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광섭 시 모음

효림♡ 2009. 6. 30. 08:09

* 비갠 여름 아침 - 김광섭 

비가 갠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

 

*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비채


* 창호지(窓戶紙) 
아주 밝은 것도 아니고
아주 어둡지도 않아서
아침 아지랑이에 햇빛 비치듯
항상 마주 앉아도 답답치는 않고
옛 산들이 어른거린다
잡음(소리)을 막아서
정(情)에 한(限)이 없고 치우치지도 않네
동방의 예지(叡智)
하루의 햇빛을 골고루 맞아들이며
성자(聖者)의 눈을 감네
정월달에 한국의 창호지에는
매화가 핀다 *

 

* 인생

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무자비한
칠십 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 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 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고 내 주었습니다 *

 

* 소망 
비가 멎기를 기다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
해를 보는 거예요

푸른 하늘이 얼마나 넓은가는
시로써 재며 사는 거예요

밤에 뜨는 별은
바다 깊이를 아는 가슴으로 헤는 거예요

젊어서 크던 희망이 줄어서
착실하게 작은 소망이 되는 것이
고이 늙는 법이예요 * 

 

* 가을이 서럽지 않게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 *

  

* 가는 길  

내 홀로 지킨 딴 하늘에서

받아들인 슬픔이라 새길까 하여

지나가는 불꽃을 잡건만

어둠이 따라서며 재가 떨어진다

 

바람에 날려 한 많은

이 한 줌 재마저 사라지면

외론 길에서 벗하던

한 줄기 눈물조차 돌아올 길 없으리

 

산에 가득히..... 들에 펴듯이.....

꽃은 피는가..... 잎은 푸른가.....

옛 꿈의 가지 가지에 달려

찬사를 기다려 듣고 지려는가

 

비인 듯 그 하늘 기울어진 곳을 가다가

그만 낯선 것에 부딪혀

소리 없이 열리는 문으로

가는 것을 나도 모르게 나는 가고 있다 

 

*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 생의 감각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민음사 

 

* 김광섭(金珖燮)시인

-1906~1977 함북 경성 사람, 1970년 국민훈장모란장. 1977년 건국포장 수상

-시집[憧憬][성북동 비둘기][김광섭시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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