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짧은 시 모음

효림♡ 2009. 7. 8. 08:54

* 저녁 무렵고은 
절하고 싶다

저녁 연기

자욱한 먼 마을 *

 

* 하늘을 깨물었더니 - 정현종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 섬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호수(湖水)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 오동도 - 이시영  

이 바람 지나면 동백꽃 핀다

바다여 하늘이여 한 사나흘 꽝꽝 추워라

 

* 봄논 - 이시영  

마른논에 우쭐우쭐 찬 봇물 들어가는 소리

앗 뜨거라! 시린 논이 진저리치며 제 은빛 등 타닥타닥 뒤집는 소리

 

* 사이 - 이시영  

가로수들이 촉촉이 비에 젖는다

지우산을 쓰고 옛날처럼 길을 건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적막하다

 

* 화살 - 이시영  

새끼 새 한 마리가 우듬지 끝에서 재주를 넘다가

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먼 길을 가던 엄마 새가 온 하늘을 가르며

쏜살같이 급강하한다

 

 세계가 적요하다

 

* 애련哀憐 - 이시영  

이 밤 깊은 산 어느 골짜구니에선 어둑한 곰이 앞발을 공순히 모두고 앉아 제 새끼의 어리고 부산스런 등을

이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겠다

 

* 빛 - 이시영 

내 마음의 초록 숲이 굽이치며 달려가는 곳

거기에 아슬히 바다는 있어라

뜀뛰는 가슴의 너는 있어라 *

 

* 모닥불 - 이시영
영하의 추위
검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를 툭툭 뻗고 있는 고목을 보면
내 가슴은 이상하게 뜨거워오니
저 강인한 자연 속에 순명을 다하고 있는 것들의 아름다운 침묵이
내 안에서도 무지개처럼 조금씩 조금씩 달아오르기 때문일까

  

* 목수의 손 - 정일근 
태풍에 무너진 담을 세우려 목수를 불렀다. 나이가 많은 목수였다. 일이 굼떴다. 답답해서 일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데 그는

손으로 오래도록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못 하나를 박았다. 늙은 목수는 자신의 온기가 나무에게 따뜻하게 전해진 다음 그 자리에 차가운 쇠못을 박았다. 그 때 목수의 손이 경전처럼 읽혔다. 아하, 그래서 木手구나. 생각해보니 나사렛의 그 사내도 목수였다. 나무는 가장 편안한 소리로 제 몸에 긴 쇠못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우는 손 - 유홍준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 봄소식 - 용혜원

봄이 온다하기에

봄소식 전하려했더니

그대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이었습니다

 

* 사랑 - 한용운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 말하리

 

* 춘서(春書) - 한용운

따슨 빛 등에 지고

유마경을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밑 글자

읽어 무삼하리오

 

봄꽃을 보니 - 김시천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었다 지고 싶습니다 

 

* 어쩌죠 - 원태연  

까맣게 잊었더니

하얗게 떠오르는 건 

 

* 사랑한다는 것은 - 원태연  

이렇게 속으로는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게 하는 일 *

 

* 序時 -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

 

* 봄이 올 때까지는 -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 겨울사랑 - 유안진  

나 혼자서 정리하고

나 혼자서 용서하며

 

얼었다가 풀렸다가

한 겨울도 깊어갑니다

 

비바람이건 눈보라이건

나 혼자의 미친 짓입니다 

 

* 날마다 내마음 바람 부네 - 이정하  

내 사는 곳에서 바람 불어 오거든

그대가 그리워 흔들리는 내 마음인 줄 알라

내 사는 곳에서 유난히 별빛 반짝이거든

이 밤도 그대가 보고 싶어

애태우는 내 마음인 줄 알라

내 사는 곳에서 행여 안개가 밀려 오거든

그대여, 그대를 잊고자 몸부림치는

내 마음인 줄 알라

내 아픈 마음인 줄 알라 

 

* 이름 부르는 일 - 박남준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네

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밀려오네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보네

문밖은 이내 적막강산

가만이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

 

* 가을편지 - 이해인

바람이 붑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내 고뇌의 분량만큼//

보이지 않게 보이지 않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 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 자화상 -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

 

* 벌레 - 이성선

한 마리 자벌레

산이었다가 들판이었다가

구부렸다 폈다

대지의 끝에서 끝으로

이 우주 안 작은 파도

 

*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한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

 

* 구혼 - 함민복  

불알이 멈춰 있어도 시간이 가는 괘종시계처럼

하체에 봄이 오지 않고 지난한 세월로 출근하는 얼굴

 

장미꽃이 그 사내를 비웃었다

너는 만개하지 못할 거야

 

그후, 시든 장미꽃이 다시 그 사내를 비웃었다

그래도 나는 만개했었어 *

 

* 입적 - 윤석산

'이만 내려 놓겠네'

 

해인사 경내 어느 숲 속

큰 소나무 하나

이승으로 뻗은 가지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

 

지상으론 지천인 단풍

문득

누더기 한 벌 뿐인 세상을 벗어 놓는다

 

* 그리움 - 나태주

때로 내 눈에서도
소금물이 나온다
아마도 내 눈속에는
바다가 한 채씩 살고 있나 보오

 

* 새벽밥 - 김승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

 

* 서시 - 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 세차 - 윤효 
비를 맞으며 세차를 하였습니다
오가는 이마다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등병 아들이 귀대하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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