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윤동주 시 모음

효림♡ 2009. 7. 13. 08:05

*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 아침
휙, 휙, 휙
쇠꼬리가 부드러운 채찍질로
어둠을 쫓아
캄, 캄, 어둠이 깊다깊다 밝으오
이제 이 洞里의 아침이
풀살 오른 소엉덩이처럼 푸르오
이 동리 콩죽 먹은 사람들이
땀물을 뿌려 이 여름을 길렀오
잎, 잎, 풀잎마다 땀방울이 맺혔오
구김살 없는 이 아침을
심호흡하오 또 하오 *

 

* 고향 집 -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 집 *

 

*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밤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 쉽게 씌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에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 편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 소년(少年)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ㅡ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ㅡ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

 

* 눈 오는 지도(地圖)  
  順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 

* 윤동주저 김진섭역[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박우사 

 

* 윤동주(尹東柱)시인  

-1917년 북간도 출생, 1945년 일본 감옥에서 사망,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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