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백련사 오솔길에 들다 - 김선태

효림♡ 2009. 7. 23. 21:40

 

* 백련사 오솔길에 들다 - 김선태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넘습니다.

초입부터 춘삼월 햇빛이 명랑하게 팔짱을 끼는데 어서 오라, 진달래꽃들 화사하게 손목을 잡습니다.

오솔길이 만덕산의 품속으로 나를 끌고 갑니다. 만덕산이 제 마음속으로 가느다랗게 오솔길을 불러들입니다.

산길이  산의 높낮이로 굽이치듯이 나도 오솔길을 따라 굽이치다가 잠깬 계곡의 물소리 만납니다.

생각해 보면, 산길은 산의 마음을 따라가는데 나는 무엇을 좇아 어디를 아수라장 헤매었던 걸까요.

계곡 물소리는 산의 중심을 깨우며 아래로 흐르는데 나는 또 삶의 어느 주변만을 헤매다 위로만 눈길을 흘렸던가요.

관목 숲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마음 한켠 잔설처럼 녹지 않는 상처들을 아프게 찌릅니다.

길섶에 앉아 쉬자니 문득  풀꽃들이 말을 붙여 옵니다.

네게도 언제 오솔길이 있었던가, 마음의 뒤란을 느릿하게 휘어도는, 그런 가느다란 오솔길 하나 있었던가 묻습니다.

얼굴 붉힌 나를 보며 싸리꽃이 까르르 잘게 웃습니다. 일어서 걸음을 재촉하려니 칡넝쿨이 발목을 잡습니다.

아서라, 찔레꽃이 옷깃을 붙들며 늘어집니다.

그러나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한 송이 초롱꽃이 어둔 마음의 심지에 불을 밝힙니다.

얼마쯤 왔을까요, 길이 제법 가파르게 아래로 미끄러집니다.

마음의 경사를 늙은 소나무가 받쳐줍니다. 굴참나무 숲도 연둣빛 어린것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스스로 환해집니다.

어디선가 한 줄기 청신한 바람이 묵은 고요를 가볍게 흔들어 놓습니다.

이윽고 오솔길이 끝나는 백련사에 다다를 무렵 기다렸다는 듯 수천의 동백들 와, 꽃망울 터뜨립니다.

저마다 허공에 화두처럼 꽃송이를 내다 겁니다.

그걸 보던 만덕산 정상 백련 한 송이 화답하듯 빙그레 벙급니다.

저물 무렵 하산하는 마음속으로 오솔길 하나 따라옵니다.

 

* 김선태시집[동백숲에 길을 묻다]-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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