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용택 시 모음 5

효림♡ 2009. 9. 4. 21:11

 

        * 사랑 - 김용택   

어둠이 몰려오는

도시의 작은 골목길 1톤 트럭 잡화장수 

챙이 낡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전봇대 밑 맨땅을 발로 툭툭 찬다

돌아갈 집이나 있는지

 

한시도 사랑을 놓지 말자 *  

 

* 달을 건져가네  

달 떴네//

꽃 지는가//

내 얼굴이 흐리네//

물살은 거세고//

달은 떠내려가네//

어느 굽이인가//

메마른 손이//

달을 거져가네 *

 

* 그리움  

오다 말다

창호지 문살에

눈 그림자 스치네

마음은 천리만리 무심인데

귀는 문밖에 서성이며

눈 맞네

 

* 풍경

추호의 망설임도 없다

무심에 가까운 단호함

극도의 사랑

어머니, 하얀 오리목을

단칼에 내려치다 

 

* 깊은 밤

깊은 밤

강가에 나가

담배를 태우다가 마을을 돌아보면

한두 집은 불빛이

새어나온다

 

마을은 하루도 깊은 밤이 없는 것이다

 

* 지리산 호랑이

할머니는 동네에서 나쁜 일을 저지르는 놈들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런 호랭이가 칵 물어갈 놈들! 지리산 호랭이는 저런놈들 안 물어가고 어디서 뭣 허는지 모르겄다."

지리산에 호랑이가 살 때였다

지금은 지리산에 호랑이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리산에 호랑이가 없다고 해서,

저렇게 나쁜 짓들을 뻔뻔하게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수만번 변해도 지리산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꽃

한점 숨김이 없다 망설임도 없다 꽃은

꽃잎 속 제 그늘에도 티 한점 없다

꽃은 호랑이도 살얼음도 무섭지 않다

허튼 짓이 없으니, 섭섭지도 않고

지는 것도 겁 안난다

 

* 실천

밤새워 생각들을 뒤적이다가

아침에 일어났더니, 창밖 벚꽃들이 자글자글 피어난다

꽃들이 나보다 훨씬 빠르다

 

* 가뭄

가을볕이 좋다. 한없다. 햇볕 아래 앉아 이렇게 저렇게 손을 말린다. 열 개의 발가락을 벌려 말린다.

아, 입을 벌려 입속을 말린다.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보일 수만 있다면 나는..... 메마른 입술 바스라지는 가슴,

풀잎들이 돌아눕는다. 산을 넘어오는 바짝 마른 길이 내 발끝에 와닿는다. 바람에 끌려가는 불쌍한 나의 사랑

그리고 나의 시..... 바람도 없고, 오가는 이 없는 빈 들이 멀리까지 쓸쓸하다.

사랑, 말하지 말라. 어디서 오든, 어디로 가든, 오늘은 마른 가을이다.

 

* 두메산골

눈 왔다// 

일없다// 

눈 녹아// 

떨어지는// 

낙숫물소리// 

일없이// 

똑 똑 똑// 

쪼르르 촘방!// 

처마 밑// 

땅을 판다// 

심심하다// 

그만// 

밥 먹자고// 

부른다 *

 

* 진달래꽃

진달래꽃은 슬프다. 애잔하고, 애틋하고, 애닯다. 진달래꽃은 서럽다. 허기지고, 배고프다.

진달래꽃은 식민지, 나라, 조국, 독립군, 이별, 초가 아래 가난한 어머니, 유랑, 사랑을 고백 못하고

딴 데로 시집가는 누님의 감춘 눈물, 지게 지고 산 넘어오는 나무꾼이 생각난다.

도망, 억울한 사랑, 머슴과 주인집 딸, 지게, 짚신, 신동엽이 생각난다. 진달래꽃은 아직도 슬프다.

 

* 오동꽃

다 꽃피면 지겠지요

꽃 다 지면 가겠지요

가면 아니 오겠지요

온다 간다 말 줄였지요

 

* 앞동산에 참나무야

앞동산의 어떤 나무는 오늘 새롭고

뒷동산 어떤 나무는 지금 낯설다

그런데 또

저 참나무는 어제 그대로구나

 

* 춘설

청매 홍매// 

꽃밭에 눈 날리네// 

지상에 헛짓인// 

저 지랄 난분분// 

미친년 데리고// 

산은 도망갔네// 

내놓은 살에// 

오 소 소// 

개방울 돋네 *

 

* 김용택시집[수양버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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