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쫓아가고 넌 달아나네 가시내같이 내 첫 가시내같이
달아나는 가쁜 숨에 나도 숨이 차
나 이제 서 있네
하늘을 인 금빛 머리카락만 보이네 *
* 오수(午睡) - 김춘추
청개구리
토란 잎에서 졸고
해오라기
깃털만치나
새하얀 여름 한낮
고요는
수심(水深)
보다 깊다 *
* 빙어(氷魚)
그 누가 유리창에 시린 창자만 그려넣었나! *
* 낮달
이승 저승 사잇길을
절뚝이며 걸어가는
나막신 한 짝 *
* 매화
어느 童妓의
전생이거나
그 밖에 또 다른
무엇이 되어
당신은 너무나
빨리 오십니다
冬冬酒 취기가
깨기도 전에
난 쫓아가고 넌 달아나네 가시내같이 내 첫 가시내같이
달아나는 가쁜 숨에 나도 숨이 차
나 이제 서 있네
하늘을 인 금빛 머리카락만 보이네 *
* 폐선(廢船)
이 항구 저 항구에서
젓가락 잘도
두들기던
목청 좋은 그 여자
목포의 눈물 같은
녹슨 세월을 베고
밀물 썰물 왔다 가는
개펄에 누웠고
엄니 갈매기 몇이
곡비(哭婢)처럼 울고 있다
* 쇠똥구리
파라오 시절 홍수에도 끄떡 않고
6.25적 그 징한 포성에도 끄떡 않고
똥을 빚어 빵을 굽는
聖 오마니
* 요셉병동
아가야 , 온 몸에 흰 피만 불어나는 아가야
나는 여윈 너의 엉덩뼈에
쇠못을 박고
밤새 영안실 모퉁이에 기대 우는
귀뚜라미이거나 혹은 어둠을
보듬고 눈 뜨는 올빼미가 된다
수천년도 더 묵은 전생의
업같은 걸 혼자 쓰고
하안 피만 도는 하얀 비둘기야
아무래도 나는 한조각 꿈도
못 푸는 요셉이거나 황혼에
쐬주나 까는 애비일뿐이구나
아가야, 뵈지 않는 쇠못을
보이는 가슴마다 꽁꽁
박고 간 아가야
* 선인장
면죄부 같은
꽃 한 송이 허락받으려
삼시 세 끼 모래로 때우고
날 때부터 귀양 사는
너를 볼 적마다
내 눈에 가시가 돋아
저승 가서도 눈 못 감겠다
* 풍경
달덩이같이뽀오얀비구니가
복숭아밭에서몰래소피를볼
때때마침지나가던둥근달이
털이보숭보숭한복숭아와박
덩이처럼잘익은엉덩이를보
고또보고웃다가기어이턱이
빠져목구멍목젖까지환하다 *
* 옛날 옛적에 훠이여
조심조심 넘은
보릿고개에서 여름
내내 소쩍새는
솥 텅 솥 텅 하더니만
이미피논이다된논에서
바람이가끔은고개숙인
벼모가지를비틀고있다
참새 떼는
갔다 다시 또 오고
개떡 삼키듯
삼킨 낮달
맛이 소태 맛이다 *
* 금강초롱
올라갈 길 내려올 길
다 지워버리고는
젊은 비구니 이제 막
夏安居에 드셨다
연등 같은
꽃 웃음에서
갓 태어난 마애불
천 길
낭떨어지에다 모셔놓고 *
* 와온(臥溫)에 오면
우린, 다 눕는다
늙은 따개비도 늙은 부락소도
늙은 늦가을 햇살도
눕는다
순천만이 안고
도는 와온에 오면
바람이 파도가 구름이
세월처럼 달려와
같이 눕나니
어쩌랴, 와온에 와
나 너랑 달랑게 되어
달랑게 되어
갯벌에
달랑 누운
따스한 이 눈물 자욱을
너
또한
어쩌랴..... *
* 봄, 북악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보니
개나리는 노랑 말로
진달래는 붉은 말로 백목련은
흰 말로
귀가 멍멍하게 유세의 절정에 있다
다들, 대통령감이다 *
* 김춘추시집[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솔
* 김춘추(金春秋)시인
-1944년 경남 남해 출생, 국내 최고의 백혈병 전문의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요셉 병동] [하늘 목장][얼음 울음][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