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종삼 시 모음

효림♡ 2009. 12. 2. 08:20

*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 김종삼시집[북치는 소년]-민음사,1979 

 

* 새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지저귀고 있다
이 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천체에 반짝이곤 한다
나는 인왕산 한 기슭
납작집에 사는 산사람이다

 

* 어부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풍경

싱그러운 巨木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 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樂器를 가진 아이와

손쥐고 가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다 *

 
* 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 詩人學校

公告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金冠植,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金素月
金洙暎 휴학계

全鳳來
金宗三 한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校舍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
* 김종삼시집[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민음사


* 비옷을 빌어 입고

온 종일 비는 내리고 
가까이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린다 
  
이십팔년 전 
선죽교(善竹橋)가 있는 
비 내리던 
개성(開城) 
  
호수돈 고녀생(高女生)에게 
첫사랑이 번지어졌을 때 
버림 받았을 때 
  
비옷을 빌어 입고 다닐 때 

기숙사에 있을 때 
  

기와 담장 덩굴이 우거져 

온 종일 비는 내리고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릴 때 *

 

* 民間人

1947년 봄

深夜

黃海道 海州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境界線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

 

* 스와니江

스와니江가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스티븐 포스터의 허리춤에는 먹다 남은
술병이 매달리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앞서 가고 있었다

영원한 江가 스와니
그리운

스티븐 * 

 

* 평화롭게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ㅡ *

 

* 물통(桶) 
희미한
풍금(風琴)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桶) 길어다 준 일 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廣野)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

 

* 나의 본적

나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본적은 거대한 계곡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 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 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다.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

 

* 미사에 참석한 이중섭씨

내가 많은 돈이 되어서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맘놓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리니

 

내가 처음 일으키는 微風이 되어서
내가 不滅의 平和가 되어서
내가 天使가 되어서 아름다운 音樂만을 싣고 가리니
내가 자비스런 神父가 되어서
그들을 한번씩 訪問하리니 *

 
* 장편(掌篇) 2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 [김종삼전집]-나남출판, 2005 

 

* 김종삼(金宗三)시인

-1921~1984 황해도 은율 사람  
-1954년 현대예술에 [돌각담] 발표, 1971년 [민간인]으로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시집 [시인학교][북치는 소년][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김종삼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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