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권선희 시 모음

효림♡ 2009. 12. 16. 08:21
* 북어의 노래 - 권선희   

낯선 동지와
서로 입을 꿰고 한 줄에 걸렸다

내장은 모두 발라내고
영롱한 의식은 바다에 남겨두고
헛것인 몸뚱이만
펄럭인다

동해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면 올수록 나는
나를 잃어야 한다
꾸득꾸득 밀려드는 안타까운 삶
우두커니 밤바닷가에서
눈알도 없는 내가
안주로 국거리로 가야 한다

너희들이 가져가는 건 빈 몸뚱이
저 깊은 바다 속 집에서는
내 아이들이 성실하게
살다간 아비의 전기를 읽고 있다 *

 

* 휘어진 문장  

사 년을 박혀 살면서도
저 휘어진 문장들 하나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무녀집과 읍사무소 담장 사이를
이가 누런 여자 아기를 잠재우려 업고 오가는 동안
이미 얼굴 세운 몇몇 낱말만을 표절하며
살아 온 것이다 서글픈 열정이 토막 낸 문장
골목으로 바람이 낮고 빠르게 불었다
텅텅거리며 저 혼자 뛰어가는 스티로폼
전봇대 중간 쯤에 기댄 매매 혹은 전세 광고
지난 여름부터 다리 절기 시작한 개와
만삭인 고양이까지도
내가 함부로 버린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를 알고 있었다
아, 늦지 않았다면
이 물렁한 칼 버리고 저 골목 끝
까맣게 온점처럼 서서 겨울 견디며
내가 휘어지겠다

 
* 풍경  

어판장 한 켠 

살았다고, 싱싱하게 살아있다고 외치는  

늙은 여자와 
죽은 고동이
 
있다 *

 

* 시인의 말  

방금, 바람이 다녀갔다

그물을 꿰고 만선기 꼽으며 채비했던

무수한 사연들이 출항했다

은빛 돛대를 세우고 귀환을 약속하는 갈매기떼

우루루 비상하는

여기 구룡포

나는 시를 쓰지 않았다

축항을 치는 파도와 말봉재 골짝골짝 넘나드는 바람

그들의 이야기를 가끔 받아 적었다 *

 

* 길을 보면 가고 싶다 -구룡포105  

천천히 걸어가는 길의 뒷모습이나

황급히 사라지는길, 치마꼬리를 향해

서 있었다

오랜 배웅의 시간

간혹 길은 바다로 첨벙 뛰어 들기도 했다

그럴때면 얼음공장 벽에 기대어

물살 가르고 튀어 오르는 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아무꽃도 피어나지 않는 시멘트 바닥에서

비린내 쪼아대는 햇살

햇살을 물고 한떼 새들이 날아오르면

다시 뭍으로 오른 젖은 길들은

숲으로 걸어갔다

길이 지나는 자리마다

겟멧꽃이 피고 마늘순이 노랗게 말라갔다

종꽃이 지고 뱀딸기가 익었다

할배는 먼 산으로 가고 아이는 더디 걸었다

그렇게 나는 길을 보내고 있었다

너른 등짝이 모퉁이를 돌아가는 내내

돌담이 붉었다

꽃을 주고 길이 또 간다

 

* 툇마루  

에고 이 여편네야

니 지금 내한테 데모하나

문디 이기 뭐꼬?

돼지괴기 한 디이 사다 볶아 묵을 생각 말고

빤쓰나 하나 장만하그라

살믄 을매나 살끼라꼬 이라노 어이?

이기 말이다 이양 니끼 아잉기라

내 맴 쪼매 짼하라꼬 수 쓰나본데 
됐다마 당장 날새믄 가가 사뿌라

난닝구도 아이고

구녕이 이래 크기 난 빤쓰로 보믄

내 맴이 우야켓노

퍼뜩 틀어 막그라

알긋나 * 

 

* 탁주  

제수씨요, 내는 말이시더. 대보 저 짝 끄트머리 골짝 남매 오골오골 부잡시럽던 집 막내요. 우리 큰 시야가
캉 스무 살 차이 나는데요. 한  날은  내를 구룡포, 인자 마보이 거가 장안동쯤 되는 갑디더. 글로  데불고 가가
전 처음으로 짜장면 안 사줬능교. 내 거그 앉아가 거무티티한 국수 나온 거 보고는 마  바로  오바이트 할라 했니더.
희안티더. 그 마이 촌놈이 뭐시 배  타고 스페인꺼정 안 갔능교. 가가 그 노무 나라 음식 죽지 몬해 묵으면서
내 구룡포 동화루 짜장면 생각  마이  했니더. 생각해 보믄 울행님이 내 보고 샐쭉이 웃던  이유 빤한데 내는
그 촌시럽던 때가  우예 이리 그립겠능교. 마 살믄  살수록 자꾸 그리운기라요. 그기 뭐시 첫사랑 고 문디가시나
그리운 것에 비할라요. 내 품은 가시나들 암만 이뻐도  울 행님 그 웃음 맨키야 하겠능교. 뭐시 이리도  급히  살았는지
내도 모르요. 참말로 문디 같은  세월이니더. 제수씨요, 무심한 기 마 세월이니더. 우예든동 한 잔 하시더…….
 

* 꽃에 대하여 -구룡포122

칠칠에 사십 구

여자나이 마흔 아홉이믄 말이요

길바닥에 내뻔져놔도 아무도 안줍어 갈 나인기라요

팔팔에 육십 사

남자나이 예순 넷캉 같은기지요


무신 소리 하노

내 아는 식당 찬모는 올해 예순 셋인데 애인이 예순 다섯인기라

그란데 마 이틀만 연애로 안하믄

온몸띠에 좀이 쑤시고 열이 화득화득 난다카드만


아고 그기 구신들이재 사램잉교

뭐시 볼끼 있겠능교

택또 웁는 소리마소


이보소 동상

삭신이 옥신옥신 한다카믄 하마 오십이요

새북이 비실비실 한다카믄 그기 육십 줄 넘는기고

마눌이 불쌍해지믄 그기 칠십인기라

니가 우예 세월이라카는기를 알겠노


행님요

벌레벌레 하믄 다 꽃잉교

말씨 솜씨 맵씨 쫀득쫀들하니

찰떡맨키로 찰기가 있어야 그기 꽃이지요


아이 이 답답한 자슥아

세월이 다 데불고 가는 거로 안즉도 모리나

개떡 아니라 찰떡도 세월 앞에서는 심이 웁다

늙으면 늙은 것들끼리 살포시 눈맞아

맴이라도 모처럼 부비고 살라고

조물주가 다 맹글어 놨으이

젊은 니는 쓸담없이 꽃타령 말고 술이나 퍼묵그라

 

* 매월여인숙 -구룡포63  

나 오늘 기필코
저 슬픈 추억의 페이지로 스밀나네
눈감은 채 푸르고 깊은 바다
흉어기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새벽이 올 때까지
은빛다방 김양을 뜨겁게 품을라네
작은 창 가득
하얗게 성에가 끼면
웃풍 가장 즐거운 갈피에 맨살 끼우고
내가 낚은 커다란 물고기와
투둘투둘 비늘 털며
긴 밤을 보낼라네 *

 

* 라면

 하루가 퉁퉁 불어터졌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속에서 꼬들꼬들 익어가는 라면에 찬밥 한 덩이 미련 없이 던져 넣는 어머니. 푹푹 개죽처럼 끓어 가난이 쟁반 위로 오르면 우리들의 그 절제된 여인은 오목한 국자로 침묵을 퍼올렸다. ‘살자’는 두 글자가 길게 올랐다가 그릇에 담겼다. 주둥이를 내밀고 당겨 앉아 도대체 얼만큼 살아야 제대로 된 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 아내의 서랍  

일요일 아침

아내는 목욕탕 가고

밖엔 비 내린다

손톱깎이 하나 처박힌 곳 모르는

내 집이 낯설다

 

서랍 안에 서랍 있다

내심 뒷돈이라도 꼬불처둔 것이기를 바라며

서랍을 연다

십 년이 된 크리스마스카드

첫차 구입 영수증

군복무 확인서와 해약한 적금통장

마른 오징어처럼 쩌억 눌러 붙어있다

제 굼을 옳게 꼬불치지 못하고

아내는

내가 훌훌 벗어던진 것들만

주워 담고 살았구나

드응신

손톱깍기도 전에

살점을 뜯겼다

 

아내 슬리퍼가 빗소리를 끌고 온다

떨어진 마음 한 점

얼른 서랍 속에 넣고 돌아앉는다 

 

* 찔레꽃   

개울가 지나다가
소리 들었을 뿐인데
소름이 화르르 돋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생풀내 풍겼는데
어머나, 소리를 보고 만 것이다

지 몸 내 몸 할 것 없이
쉭쉭 감아 조으고 도는 둥그런 뱀떼
소복한 가시덤불엔 흰꽃 아찔아찔
그만 홀딱 까무러치고 말았다

내 몸 영글어 눈알 새까만 씨앗 떨구고서야
그건 찔레나무
하얗게 넘어가는 소리라는 걸 알았는데

찔레꽃, 떠울릴 때마다
가시나무에 매달려 겁나게 사랑하던
숲의 둥긂이 살아나
한겨울에도 온몸이 스멀스멀하다 
 

 

 * 권선희시집[구룡포로 간다]-애지
 

* 권선희시인 

-1965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98년 [포항문학]작품활동

-시집 [구룡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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