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춘추 시 모음

효림♡ 2009. 12. 1. 08:04

* 오수(午睡) - 김춘추  
청개구리
토란 잎에서 졸고

해오라기
깃털만치나
새하얀 여름 한낮

고요는
수심(水深)
보다 깊다 *

 

* 빙어(氷魚)

그 누가 유리창에 시린 창자만 그려넣었나! *

 

* 낮달  

이승 저승 사잇길을

절뚝이며 걸어가는

 

나막신 한 짝 *

 

* 매화

어느 童妓의

전생이거나

그 밖에 또 다른

무엇이 되어

당신은 너무나

빨리 오십니다

冬冬酒 취기가

깨기도 전에

 

* 지평선 

난 쫓아가고 넌 달아나네 가시내같이 내 첫 가시내같이

달아나는 가쁜 숨에 나도 숨이 차

나 이제 서 있네

하늘을 인 금빛 머리카락만 보이네 *

 

* 폐선(廢船)

이 항구 저 항구에서

젓가락 잘도

두들기던

목청 좋은 그 여자

목포의 눈물 같은

녹슨 세월을 베고

밀물 썰물 왔다 가는

개펄에 누웠고

엄니 갈매기 몇이

곡비(哭婢)처럼 울고 있다

 

* 쇠똥구리  

파라오 시절 홍수에도 끄떡 않고 

6.25적 그 징한 포성에도 끄떡 않고

 

똥을 빚어 빵을 굽는 

 

聖 오마니

 

* 요셉병동
아가야 , 온 몸에 흰 피만 불어나는 아가야

나는 여윈 너의 엉덩뼈에
쇠못을 박고
밤새 영안실 모퉁이에 기대 우는
귀뚜라미이거나 혹은 어둠을
보듬고 눈 뜨는 올빼미가 된다

수천년도 더 묵은 전생의
업같은 걸 혼자 쓰고
하안 피만 도는 하얀 비둘기야
아무래도 나는 한조각 꿈도
못 푸는 요셉이거나 황혼에
쐬주나 까는 애비일뿐이구나
아가야, 뵈지 않는 쇠못을
보이는 가슴마다 꽁꽁
박고 간 아가야

 

* 선인장  

면죄부 같은

꽃 한 송이 허락받으려

삼시 세 끼 모래로 때우고

날 때부터 귀양 사는

너를 볼 적마다

내 눈에 가시가 돋아

저승 가서도 눈 못 감겠다

 

* 풍경

달덩이같이뽀오얀비구니가
복숭아밭에서몰래소피를볼
때때마침지나가던둥근달이
털이보숭보숭한복숭아와박
덩이처럼잘익은엉덩이를보
고또보고웃다가기어이턱이
빠져목구멍목젖까지환하다 *

 

* 옛날 옛적에 훠이여

조심조심 넘은

보릿고개에서 여름

내내 소쩍새는

솥 텅 솥 텅 하더니만

 

이미피논이다된논에서

바람이가끔은고개숙인

벼모가지를비틀고있다

 

참새 떼는

갔다 다시 또 오고

 

개떡 삼키듯

삼킨 낮달

맛이 소태 맛이다 *

 

* 금강초롱 

올라갈 길 내려올 길

다 지워버리고는

젊은 비구니 이제 막

夏安居에 드셨다

연등 같은

꽃 웃음에서

갓 태어난 마애불

천 길

낭떨어지에다 모셔놓고 * 

 

* 와온(臥溫)에 오면 
우린, 다 눕는다
늙은 따개비도 늙은 부락소도
늙은 늦가을 햇살도
눕는다
순천만이 안고
도는 와온에 오면
바람이 파도가 구름이
세월처럼 달려와
같이 눕나니
어쩌랴, 와온에 와
나 너랑 달랑게 되어
달랑게 되어
갯벌에
달랑 누운
따스한 이 눈물 자욱을

또한
어쩌랴..... *

 

* 봄, 북악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보니

 

개나리는 노랑 말로

진달래는 붉은 말로 백목련은

흰 말로

귀가 멍멍하게 유세의 절정에 있다

 

다들, 대통령감이다 *

 

* 김춘추시집[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솔 

 

* 김춘추(金春秋)시인

-1944년 경남 남해 출생, 국내 최고의 백혈병 전문의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요셉 병동] [하늘 목장][얼음 울음][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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