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새해 시 모음

효림♡ 2009. 12. 29. 08:44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 새해의 기도 - 이성선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 [이성선시전집]-시와시학사

 

* 새해 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 신년기원(新年祈願) - 김현승

몸 되어 사는 동안

시간을 거스를 아무도 우리에겐 없사오니

새로운 날의 흐름 속에도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희망-당신의 은총을

깊이깊이 간직하게 하소서

 

육체는 낡아지나 마음으로 새로웁고

시간은 흘러가도 목적으로 새로워지나이다

목숨의 바다-당신의 넓은 품에 닿아 안기우기까지

오는 해도 줄기줄기 흐르게 하소서

 

이 흐름의 노래 속에
빛나는 제목의 큰 북소리 산천에 울려퍼지게 하소서!

* 신년기원 중에서ㅡ

 

* 덕담 - 도종환 

지난해 첫날 아침에 우리는
희망과 배반에 대해 말했습니다
설레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소리 들었지만
골목길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 도종환시집[당신은 누구십니까]-창비


* 신년시(新年詩) - 조병화
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無限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大地의 나무들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日月의 영원한
이 回轉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約束된 旅路를 동행하는
有限한 生命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더
가까이 이어져라

 

* 새해 새날은 - 오세영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
침묵으로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
나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
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
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아득히 들리는 함성
그것은 빛과 밫이 부딪혀 내는 소리
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
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에
실낱같은 물이 흐르고
숲은 일제히 빛을 향해
나뭇잎을 곧추세운다

 

신년시 -닭이 울어 해는 뜬다 - 안도현
당신의 어깨 너머 해가 뜬다 
우리 맨 처음 입맞출 때의 
그 가슴 두근거림으로, 그 떨림으로 
당신의 어깨 너머

첫닭이 운다 
해가 떠서 닭이 우는 것이 아니다 
닭이 울어서 해는 뜨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처음 눈 뜬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울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울었기 때문에 
세계가 눈을 뜬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하고 나하고는 
이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
더도 덜도 말고 냉수 한 사발 마시자 
저 먼 동해 수평선이 아니라 일출봉이 아니라 
냉수 사발 속에 뜨는 해를 보자 
첫닭이 우는 소리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세상의 끝으로 
울음소리 한번 내질러보자

 

*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歲)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 이해인 

평범하지만

가슴엔 별을 지닌 따뜻함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신뢰와 용기로써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해 주십시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월의 보름달만큼만 환하고

둥근마음 나날이 새로 지어 먹으며

밝고 맑게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너무 튀지 않는 빛깔로

누구에게나 친구로 다가서는 이웃

그러면서도 말보다는

행동이 뜨거운 진실로 앞서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랜 기다림과 아픔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화해와 용서를 먼저 실천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롭게 이어지는 고마움이 기도가 되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 지루함을 모르는

[기쁨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 연하장(年賀狀) - 김남조
설날 첫 햇살에 펴 보세요
 
잊음으로 흐르는 강물에서
옥돌 하나 정 하나 골똘히 길어내는
이런 마음씨로 봐 주세요
 
연하장
먹으로
써도 彩色(채색)으로 무늬 놓는 편지

온갖 화해와 함께 늙는 회포에 손을 쪼이는 편지

제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글씨는 없이 목례만 드린다

 
*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未知修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 신년! 해피 뉴 이어!  

* 연하카드 - 황인숙 
알지 못할 내가
내 마음이 아니라 행동거지를
수전증 환자처럼 제어할 수 없이
그대 앞에서 구겨뜨리네
그것은, 나의 한 시절이 커튼을 내린 증표

시절은 한꺼번에 가버리지 않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물, 한 사물
어떤 부분은 조금 일찍
어떤 부분은 조금 늦게

우리 삶의 수많은 커튼
사람들마다의 커튼
내 얼굴의 커튼들

오, 언제고 만나지는 사물과 사람과
오, 언제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나는 중얼거리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신부님이나 택시 운전수에게 하듯
그대에게

축, 1월!
 
* 연하장 - 이생진 
서독까지 250원
[근하신년]이라고 찍힌 활자 밑에
이름 석 자 적는다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등
네게 이르지 못한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는 표시
해마다 눈오는 12월
그때쯤에서 생각나는 사람
우표 값이 250원
비행기표 값이 그렇게 싸다면
벌써 찾아갔지

올해도 [근하신년] 그 밑에
이름 석 자 적고
그날부터 잊기 시작하는 사람
 
원단(元旦) - 조운
어허 또 새해라니
어이 없어 하면서도

이新聞 저新聞
뒤적쥐적 뒤지다가

오늘도 다름 없이 거저
해를 지워 버렸다
 
* 아침 이미지 - 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 새해 - 구상
내가 새로와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와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와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
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
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
그것은 생활의 律調일 따름이다

흰 눈같이 맑아진 내 意識은
理性의 햇발을 받아 번쩍이고
내 深呼吸한 가슴엔 사랑이
뜨거운 새 피로 용솟음친다

꿈은 나의 忠直과 一致하여
나의 줄기찬 勞動은 고독을 쫓고
하늘을 우러러 소박한 믿음을 가져
祈禱는 나의 日課의 처음과 끝이다

이제 새로운 내가
서슴없이 맞는 새해
나의 生涯, 최고의 성실로서
꽃피울 새해여!
 

* 새해 - 피천득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 아침의 기도 - 용혜원
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은
이 땅 어느 곳에나 비추이게 하소서

손등에 햇살을받으며
봄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병상의 아픔에도
젋은 이들의 터질 듯한 벅찬 가슴과
외로운 노인의 얼굴에도
희망과 꿈이 되게 하소서

또다시 우리에게 허락되는 365일 삶의 주머니 속에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결실로 가득 채워
한 해를 다시 보내는 날은
기쁨과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이 해는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이들을
건강한 사람들은 아픔의 사람들을
평안한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손길이 되게 하소서
이새로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으로
이 땅의 사람들의 영원 향한 소망을 이루게 하시고
이 아침의 기도가 이 땅 사람들이
오쳔년을 가꾸어온 사랑과 평화로 함께 하소서

* 새아침에 - 조지훈 

모든 것이 뒤바뀌어 秩序를 잃을지라도

星辰의 運行만은 변하지 않는 法度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뜻두고 이루지 못하는 恨은

太初 以來로 있었나부다

다시 한 번 意慾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不退轉의 決意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義와 不義를

삶과 죽음을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山脈 위에 보라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波濤 위에

이글이글 太陽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

 

* 새해 두어 마디 말씀 - 고은

새해 왔다고 지난날보다
껑충껑충 뛰어
端午날 열일곱짜리 풋가슴 널뛰기로
하루 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

새해도 여느 여느 새해인지라
궂은 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
때로 그런 것들을
칼로 베이듯 잘라버리는
해와 같은 웃음소리 있을 터이니

우리 아낙네들이시여
쥔 양반과 다툴 때 조금만 다투고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눈을 부릅떠서
지지리 못난 사내 짓 고쳐 주시압
에끼 못난 것! 철썩 불기라도 때리시압
그 뿐 아니라
우리 아낙네들이시여

우리 집만 문 잠그고 으리으리 살 게 아니라
더러는 지나가는 이나 이웃이나
잘 안되는 듯하면
뭐 크게 떠벌릴 건 없고
그냥 수숫대 수수하게 도우며 살 일이야요
안 그래요? 우리 아낙네들이시여
예로부터 변하는 것 많아도
그 가운데 안변하는 심지 하나 들어 있어서
그 슬기 심지로 우리 아낙네들 크낙한 사랑이나 훤히 밝아지이다
마침내 우리 세상 훤히훤히 밝아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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