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도라지꽃 시 모음

효림♡ 2010. 1. 14. 09:39

 

* 도라지꽃 - 이해인 

엷게 받쳐 입은 보라빛 고운 적삼

찬 이슬 머금은 수줍은 몸짓

사랑의 순한 눈길 안으로 모아

가만히 떠 올린 동그란 미소


눈물 고여오는 세월일지라도

너처럼 유순히 기도하며 살고 싶다

어느 먼 나라에서 기별도 없이 왔니

내 무덤가에 언젠가 피어 잔잔한 연도를 바쳐 주겠니 *

 

* 도라지꽃 - 정한용 

흰 꽃이 피었습니다

보라 꽃도 덩달아 피었습니다

할미가 가꾼 손바닥만한 뒤 터에

꽃들이 화들짝 화들짝 피었습니다

몸은 땅에 묻혀 거름이 되고

하얀 옷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무더기로 손 쓸립니다

수년 전 먼저 길 떠난 내자(內子)를 여름빛으로 만나

한참을 혼자 바라보던 할애비도

슬며시 보랏빛

물이 듭니다 * 

 

* 도라지꽃 - 한승원 

뙤약볕 여름 기울어지고 귀뚜라미 울면

나 산으로 들어갈 거야

머리 옥빛 나게 깎고 송낙 깊이 눌러쓰고

송이송이 살구꽃 눈바람에 날리던 날

나 버리고 훌쩍 떠난 그대 마을로

탁발가게

나무 관세음보살

사랑 시주하십시오 * 

* 도라지꽃 - 조지훈

기다림에 야윈 얼굴
물 위에 비초이며//
가녀린 매무새
홀로 돌아앉다.//
못 견디게 향기로운
바람결에도//
입 다물고 웃지 않는
도라지꽃아 *

 

* 도라지꽃 - 손해일
요요한 초승달 속눈썹
남갑사 끝동저고리
십년수절 청상

보랏빛 꽃잎에
옥맺힌 눈물매듭
深山 골골이
뿌리로 깊더이다

아으 다롱디리 
 
* 도라지꽃 - 송수권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풋보리밥 한술 된장국 말아먹고
지름댕기 팔랑팔랑
올해 네 나이 몇 살이더냐
도래샘도 띠앗집도 다 버리고
눈 오는 날 주재소 앞마당 전남班으로
너는 열여섯 정신대 머릿수건을 쓰고
고목나무 뒤에 붙어 참매미처럼 희게 울더니
 
오끼나와 테니안 라바울 사이펀
그 어디쯤 흘러가
한 초롱 여름산 더윗술을 걸러주며
여적 그 섬 기슭 혼자 폈느냐
 
내 어려선 막내고모 같던 鐘꽃
 
도라지 너를 보면
三韓적 맑은 하늘
이슬 내리는 소리
胡弓 소리 *

 

* 도라지꽃 - 오세영

지상에 떨어진 별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더러는 불 타 허공에 사라지고 더러는

죽어 운석으로 묻히지만

나는 안다.

어디엔가 살아 있는 별들도 있다는 것을,

깊은 산속

구름 호젓하게 머물다간 자리에 아아,

날개 상해 떨어진 별들이

한 무더기 도라지꽃으로 피어 있구나.

눈썹에

아슴히 맺히는 이슬은

다시 하늘로 돌아 갈 수 없는 그

슬픔인 것을. * 

 

* 도라지꽃의 비련 - 유응교
가난하지만 땀 흘려 일하고
배운 건 없지만 심성이 착한
그런 사람이 전 좋아요

돈을 긁어 모아놓고 큰소리치고
높은 벼슬자리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그런 사람이 전 싫어요

관가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감언이설로 회유를 해도 제 마음을 
하루아침에 꺾어 버릴 수는 없어요

바람소리 물소리 한데 어울리고
새들이 노래하는 푸른 숲 길에서
오로지 그대만을 기다리고 싶어요

그대를 위하여 이승을 떠나더라도
그대가 다니는 산길에 묻어주세요
청초한 미소로 향기를 보내드릴게요 


* 백도라지 - 김용택

나들 두고 

산모퉁이 돌아가던 날 

산도라지꽃 피었지요 

산도라지 백도라지 

내가 울던 백도라지 

살다보면 서러운 이별도 있답니다 

만지면 하얗게 부서지며 손끝에서 사라지는 

아련한 날들 

서러운 그 흰빛으로 

서 있는 

산도라지 백도라지 

내가 울던 저 백도라지 

살다보면 서러운 이별도 있답니다

너무 울어서 

하얗게 너무나 울어서 

산도라지 백도라지 

가던 길 가지 못하고 

해마다 그 자리에서 

부서져 

흩어지는 저 백도라지 *

* 김용택시집[연애편지]-마음산책

 

* 도라지꽃 신발 - 안상학  

공중전화 부스에서 딸에게 전화를 걸다
문득 갈라진 시멘트 담벼락 틈바구니서 자란
환한 도라지꽃을 보았네 남보랏빛이었네
무언가 울컥, 전화를 끊었네

 

딸아
네 아버지의 아버지도 저리 환하게 살다 가셨지
환하지만 아주 환하지는 않은 저 남보랏빛 꽃처럼
땅 한 평, 집 한 칸 없이도 저리 살다 가셨지

 

지금 나도 저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환하지만 아주 환하지는 않은 얼굴로
아주 좁지만 꽉 찬 신발에 발을 묻고 걸어가고 있겠지
도라지의 저 거대한 시멘트 신발 같은 걸 이끌고
네 아버지의 아버지처럼

 

환한 딸아 지금 내가 네 발 밑을 걱정하듯
네 아버지의 아버지도 내 발 밑을 걱정하셨겠지
필시, 지금 막 도라지꽃 한 망울이 터지려 하고 있다
환하지만 다 환하지만은 않은 보랏빛 딸아
내가 사 준 신발을 신은 딸아

 

* 도라지꽃 피는 계절 - 박라연

허무의 밭에
새하얀 두루미 우수수 내려 앉는다
보라빛 나비 떼지어 훨훨
흰두루미 사이에서 훨훨
사랑이 별것이더냐
슬퍼하는 일이제
밭이랑 사이로 철썩 철썩 파도치는 일이제
아직도 슬픔의 파도 출렁인다면
봉긋 봉긋 도라지꽃, 도라지꽃 피어 날 수 있겠네
  
꽃봉오리 깨물면 비릿한 향기
적막한 산천을 적시겠네
  
찌르르 찌르르 봉분마다
숯처녀 적 도라지꽃 피어 나겠네  
  
허리 굽혀 일하던 농부 덩달아 훨훨
두루미 되어 날아 오르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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