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은 죄 -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
* 산 너머 남촌에는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령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나//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데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유성
계곡의 물소리에 실린 바람이
잠든 이슬을 깨우는 밤
어둠 속에 벌거벗은 나무들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쳐다보면
유성이 사랑에 밑줄을 그으며 사라져 간다
* 해당화
진하게, 지내 진하게 피어난 해당화
사내 심정을 두 벌로 설레이게 하는 해당화
피기 전엔 내 안 보는 데서 피어버릴까 근심시키고
피고 난 뒤는 또 나 보는 데서 져버릴까 조마조마케 하는
* 바람은 남풍
바람은 남풍
시절은 사월
보리밭녘에
종달새 난다
누구가 누구가
부르는 듯
앞내 강변에
내달아 보니
하ㅡ얀 버들꽃
웃으며 손짓하며
잡힐 듯 잡힐 듯
날아가버린다
바람이야 남풍이지
시절이야 사월이지
왼종일 강가서
버들꽃 잡으려 오르내리노라 *
*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꽃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펴
건넛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봄이 오면 하늘 우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캐기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주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꽃 되어 웃어본다오
* 북청 물장사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드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사.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사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사.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강이 풀리면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 아무도 모르라고
떡갈나무숲 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른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
* 김동환(金東煥) 시인
-1901년 함북 경성 출생, 납북
-한국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의 시인
-시집 -[국경의 밤][승천하는 청춘][해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