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짧은 시 모음 2

효림♡ 2010. 3. 5. 08:36

* 자운영꽃 - 나태주

잃어버린 옛날이야기가
모두 여기 와 꽃으로 피었을 줄이야 *

 

*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 나태주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흰구름도 흰구름이 아니요
꽃도 꽃이 아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새 소리도 새 소리가 아니요
푸른 하늘도 푸른 하늘이 아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은 강물도
결코 그림이 될 수 없으며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

 

* 비 - 이영도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

 

* 바위 - 이영도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귀먹고 눈 먼 너는
있는 줄도 모르는가

파도는
뜯고 깎아도
한번 놓인 그대로.....*

 

* 비온뒤 - 박현수

잡목 숲에 멈춘
소나기는
바람이 밑둥을 지나자
후두둑
뛰어 내린다

푸른 언덕엔
젖은 강아지처럼 몸을 터는
상수리 나무 * 


* 낙화유수 - 함성호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

 

* 시론(詩論) - 서정주

바다 속에서 전복 따 파는 제주해녀도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주려고
물 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 전복도 제일 좋은 건 거기 두어라
다 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 두고 바다 바래여 시인인 것을 *

 

* 물방울의 시 - 이흔복

꽃잎에 송알송알 맺혀 꽃말에 귀 기울이는 물방울. 풀잎 위 고요히 안착하여 스스로를 빛내는 영롱한 물방울

스며들거나 깐깐오월 돋은볕이면 증발할 것만 같은, 번지거나

 

명지바람이면 합쳐져 흘러내릴 것만 같은 한순간, 순간!

이윽고는 얽박고석 위 얼룩으로 남는 물, 방, 울. *

* 이흔복시집[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솔

 

* 요산요수(樂山樂水) - 이창수

무등산 뒷고개를 넘다 보면 김삿갓이 썼다는 樂山樂水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남녀가 호젓한 그 산길을 걷다가 여자가 물었다
오빠 저게 무슨 말이야.락산락수야 남자가 말해주자 아!여자는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남자를 보았다
혼자 족두리봉을 오르는 길에 토끼봉 약수보다 맑은 오래전 그 여자의 예쁜 눈이 생각났다 *

 

* 희망 - 박경순 

날 수만 있다면
보이지 않는
너의 마음 위로 날아가
사뿐히 앉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늘어지는 햇살을
잘게 부수어
그대 창가에
뿌리고 싶다 *

 

* 천년의 그리움 - 문병학

비 내리는 산길을 오릅니다  발소리에 놀란 산새들의 젖은 날갯짓 소리 활엽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어 깊숙이 가라앉습니다 천지간 이룰 수 없는 그리움은 없다 죄 없는 삶은 없다 앞뒤 없는 생각으로 산자락을 돌아들자 대웅전 추녀 끝

쇠물고기가 가만히 다가와 시린 이마를 칩니다 뜰 아래 비에 젖은 상사화 또다시 이승의 흙 위에 맨몸으로 눕고 무슨 죄값인지 대웅전 앞 귀떨어진 5층 석탑은 천년의 세월을 벌로 서 있습니다

한 마음 속의 또 다른 수천의 나를 다스려 간절한 그리움 하나 이루기에는 한 생의 죄값을 다 치르기에는 이승의 천년 세월은

너무 짧은가 싶습니다 젖은 몸이 자꾸만 떨립니다 *


* 냉이꽃 - 이근배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것 같아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 

 

* 기도실 -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
 

* 두고 온 소반 - 이홍섭
절간 외진 방에는 소반 하나가 전부였다
늙고 병든 자들의 얼굴이 다녀간 개다리소반 앞에서
나는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었다

뭘 가지고 왔냐고 묻지만

나는 단지 낡은 소반 하나를 거기 두고 왔을 뿐이다 *

 

* 적멸보궁 - 설악산 봉정암 - 이홍섭 
젊은 장정도 오르기 힘든 깔딱고개를 넘어온 노파는
향 한 뭉치와 쌀 한 봉지를 꺼냈다
이제 살아서 다 오지 못할 거라며
속곳 뒤집어 꼬깃꼬깃한 쌈짓돈도 모두 내놓았다
그리고는 보이지도 않는 부처님전에 절 세 번을 올리고
내처 깔딱고개를 내려갔다

시방 영감이 아프다고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고 *

 

처음엔 늘 환했다 - 김용택
매미가 운다
매미 소리에 내 마음을 준다
 
개망초 꽃이 피었다
꽃에게 내 마음을 준다
 
살구나무에 바람이 분다
바람에게 내 마음을 준다
 
날아가는 나비에게
가만히 서 있는 나무에게 마음을 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세상 처음이었던 내가 보인다
처음엔 늘 환했다 * 

 

* 귀뚜라미 - 장석주

댓돌 위에 대 그림자,

밤새

우는 귀뚜라미,

못 말리는 본성이다.

꺾지 못한

취향이다.

울어라! 울음으로써

네 노동을 마쳐라. *

* 장석주시집[몽해항로]-민음사

 

* 비 - 장석주

산뽕나무에 푸른 비

금광호수에 푸른 비

아침 먹고 봐도 비

옥수수 먹고 봐도 비

산빛은 종일 푸르고

굴속 여우도 긂는다. *

* 장석주시집[몽해항로]-민음사

 

* 소나기 - 장석주

구름은 만삭이다,  

양수가 터진다.  

흰 접시 수만 개가 산산이 박살 난다.

하늘이 천둥 놓친 뒤

낯색이 파래진다 *

* 장석주시집[몽해항로]-민음사

 

* 아는 놈 - 김영승  

"아는 놈야?"

"모르는 놈인데?"

턱끝으로 가리키며 그들은 그렇게 주고받고 있었다

부평역 플랫폼엔 비가 내리는데

겨울인데

화장실에서 나오며 

그들은

 

나는 그들한테도

모르는 놈이다 *

 

* 들꽃언덕에서 - 유안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언덕에서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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