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내소사 시 모음

효림♡ 2010. 4. 5. 08:27

 

* 소리물고기 - 복효근 

내소사 목어 한 마리 내 혼자 뜯어도 석 달 열흘 우리 식구 다 뜯어도 한 달은 뜯겠다 그런데 벌써 누가 내장을 죄다 빼 먹었는지 텅 빈 그 놈의 뱃속을 스님 한 분 들어가 두들기는데.....

소리가 한, 그 소리가 허공 중에 헤엄쳐 나가서 한 마리 한 마리 수천마리 물고기가 되더니 하늘의 새들도 그 물고기 한 마리씩 물고 가고 칠산바다 조기 떼도 한 마리씩 온 산의 나무들도 한 마리씩 구천의 별들도 그 물고기 한 마리씩 물고 가는데.....

 

온 우주를 다 먹이고 목어는 하, 그 목어는 여의주 입에 문 채 아무 일없다는 듯 능가산 숲을 바람그네 타고 노는데.....

 

숲 저 쪽 만삭의 달 하나 뜬다 *

 

* 내소사 가는 길 - 김용택 

서해 바다 

내소사  푸른 앞바다에
꽃산 하나 나타났네
달려가도 달려가도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또 산을 넘어
아무리 달려가도
저 꽃산 눈 감고
둥둥 떠가다
그 꽃산 가라앉더니
꽃잎 하나 떴네
꽃산 잃고
꿈 깨었네 *

 

* 내소사에서 - 김경진  

산 속의 밤은 차고, 그리운 것들은 별처럼 멀리 흩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그대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잣나무 위에 사발만하게 걸린 별처럼 여기선 모두 가깝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마음속엔 저 어두운 밤하늘처럼 감추어진 하늘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혼자 아파하거나 꿈꿀 때에도 저 별들처럼 서로에게 환히 빛나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하고계신지요. 그대 지난날들을 아파한다는 소식, 꿈을 잃기도 했다는 소식 듣고 있습니다. 이런 밤에는 저 높은 잣나무를 타고 싶습니다. 그 어두운 하늘에서 그대의 아픔이 별로 돋는 걸 보고 싶습니다. 밤새 잣나무를 타며 별을 지키는 소년들의 전설이 저 어두운 하늘의 어디에선가 별자리로 돋고 있을 것 같은 밤입니다. * 

 

* 내소사 대웅전 단청 - 서정주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희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내벽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하고 있는 선사,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너무나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의 공백을 가 보아라.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웅보전을 지어 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어스럼 제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서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 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그런데 일에 폐는 속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정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 마리가 천정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었는데, 들여다 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어져 내려 마루 바닥에 납작 사지를 뻗고 늘어지는 걸 보니, 그건 커어다란 한 마리 불호랑이었다.
“대호 스님! 대호 스님! 어서 일어나시겨라우!”
중들은 이 곳 사투리로 그 호랑이를 동문 대우를 해서 불러댔지만 영 그만이어서, 할 수 없이 그럼 내생에나 소생하라고 이 절 이름을 내소사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단청하다가 미처 다 못한 그 빈 공백을 향해 벌써 여러 백년의 아침과 저녁마다 절하고 또 절하고 내려오고만 있는 것이다 *

 

* 내소사 단청 - 장하빈 

전나무 숲길 지나

벚나무 화안한 마당 지나

능가산 내소사 들어서면 

저 높은 곳, 둥지 튼 비탈진 삶도

따사로운 봄 언덕에 기대었습니다

 

대웅보전 들러 합장하는 순간

수수꽃다리 훔쳐보던 사랑  

부처님한테 그만 들키고 말아

붓을 물고 관음벽화 속으로 날아갔습니다  

요사채 뒷마당 우물가 돌아가 보면

붉은 깃털 하나 빠져 울고 있었습니다 *

 

* 내소사에서 쓰는 편지 - 김혜선
친구여
오늘은 너에게 내소사 전나무숲의
그윽한 향기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너에게 내소사 솟을꽃살문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
한 송이 한 송이마다 금강경 천수경을 새겨 넣으며
풍경소리까지도 고스란히 담아냈을
누군가의 소명을 살그머니 엿보고 싶다
매화 국화 모란 꽃잎에
자신의 속마음까지도 새겨 넣었을
그 옛날 어느 누구의 곱다란 손길이
극락정토로 가는 문을 저리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맞이하는 것인지
길이 다르고 꿈이 다른 너와 내가 건너고 싶은
저 꽃들을 바라보며
저 꽃에서 무수히 흘러나오는 불법을 들으며
나는 오늘 너에게 한 송이 꽃을 띄운다 *
 

 

* 내소사 - 박현수 
1
길은 흘러내린다
꿈꾸는 것은 모두
스스로의 무게로 흘러내리고 만다
모래도, 흐르는 모래만이
강을 이루고
산으로 떠돌 수 있는 것이다
내소사 낡은 문을 들어설 때
거대하게 꿈틀거리던
유사(流砂)가 하늘을 흐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적막한 발소리가 걸어 들어온다
뫼비우스의 길
어디서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만
누군가 이 길을 개관하는 이가 있다

적요가 깊을수록
벽은 하나씩 허물어지고
내소사 낡은
뜨락에 단풍은 별처럼 지다


2
길이 늘
수평선으로 흘러드는 서해에 서면
옥상에 뿌리를 둔 담쟁이처럼
가을은
경도를 타고 내려 온다고 한다
전나무 숲을 지나
낙엽 붉어 길 더욱 밝은 외길을
하염없이 빨아들이는 내소사
볕이 드는 툇마루의 오후를
스님의 말은
그림자의 내 귓속으로 지나가고
내 말은
결 불거진 기둥 사이로 흩어지고 있었다
전나무 씨앗이 날아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진 짐이 한짐이라서

청련암을 물었다
석벽 아래
한 뼘

스님의 손 끝에 단풍이 탄다 *

 

* 내소사 꽃창살 - 박성우

등푸른 햇살이 튀는 전나무 숲길 지나

내소사 안뜰에 닿는다

세 살배기가 되었을 법한 사내 아이가

대웅보전 디딤돌에 팔을 괴고 절을 하고 있다

일배 이배 삼배 한번 더,

사진기를 들고 있는 아빠의 요구에

사내 아이는 몇 번이고 절을 올린다

저 어린 것이 무엇을 안다고,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 문(門)이 환희 웃는다

사방연속으로 새겨진

꽃창살무늬의 나무결을 손끝으로 더듬다 보니

옛 목공의 부르튼 손등이 만져질 듯하다

나무에서 빼낸 옹이들이

고스란히 손바닥으로 들어앉았을 옛 목공의 손

거친 숨소리조차 끌 끝으로 깍아 냈을 것이다

결을 살리려면 다른 결을 파내어야 하듯

노모와 어린 것들과 아내를 파내다가 이런!

꽃, 창, 살, 무, 늬

옹이 박힌 손에 붉게 피우곤 했을 것이다. * 

 

* 내소사 숲길 - 용혜원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발걸음을
빨리 옮겨놓고 싶지 않다

잠시 흐르는 세월을 잊고 걸으면
온몸에 퍼져오는
숲의 향기를 다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전나무 행렬 속으로
빠져들다보면
세상 시름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마음에 남아 있던 모든 찌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숲 속에 나만이 남아 있다 *

* 용혜원시집[내 마음에 머무는 사람]-나무생각 

 

* 꽃살문 - 이정록 

꽃에는 정작 방년(芳年)이란 말이 없다네

그래,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칼과 붓으로 나를 피워놓았네만

그 붓끝 떨림이며 칼자국, 바람에 다 삭혀내야

꽃잎에 나이테 서려 무는 방년 아니겠나?

꽃이란 게, 향과 꿀을 퍼내는 출문이자 열매로 가는 입문이라

나도 고개 돌려 법당 마루에 오체투지하고 싶네만

마른 주둥이 훔치는 햇살 천년 바람 천년

법당 마당의 싸리비질 자국만 돋을새김하고 있네

그렇다네, 이 문짝에 염화(拈華) 없다면

어찌 어둔 법당에 미소(微笑) 있겠는가?

풍경소리며 목탁소리에도 나이테가 있는 법

날 쓰다듬고 가는 저 달빛 구름 그림자처럼

씨앗 쪽으로 잘 바래어 가시게나 *

* 이정록시집[정말]-창비

 

* 來蘇寺 풍경소리 - 심재휘
곧은 길이었다
한 곳에 이르는 모든 길은 서로 닮는다고
來蘇寺는 눈이 쌓이기 전부터
눈빛이었다 처마엔 風磬 하나 있었다
누군가가 지핀 향에선 함부로 연기가 오르고
삼삼오오 모여 찍는 빛의 그림 속에도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저의 발 아래
돌아나갈 숲길을 누구나 하염없이 바라볼 때
풍경 하나 얼핏 움직인 것도 같았다
눈 녹으며 봄 오는 내소사의 숲에는
풍경소리 들릴 듯 말 듯 하였는데
風景 안에는 그 소리 지워지고 없었다
투명한 겨울 빛도 비껴가는
한 마리 눈 먼 물고기
바람의 풍경은
오랫동안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

* 심재휘시집[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문학세계사

 

* 蘇來寺 - 金時習 

梵宮倚山外 夕陽樓閣開

僧尋泉脈去 鶴避茗烟廻

寺古松千尺 山深月一堆

無人堪問話 庭園獨徘徊

* 소래사에서

절은 산 모퉁이에 있고, 열린 누각을 비추는 석양

스님은 찻물 뜨러 나서니, 학은 놀라 피한다네

오래된 절간에 소나무 크게 자라, 깊은 산 달 빛만 가득하네

말 건넬 사람도 없어, 홀로 뜰을 서성거리네

 

* 邊山蘇來寺 - 鄭知常

古徑寂寞縈松根 - 고경적막영송근  天近斗牛聊可捫 - 천근두우료가문

浮雲流水客到寺 - 부운유수객도사  紅葉蒼苔僧閉門 - 홍엽창태승폐문 

秋風微凉吹落日 - 추풍미량취낙일  山月漸白啼淸猿 - 산월점백제청원 

奇哉厖眉一老納 - 기재방미일노납  長年不夢人間暄 - 장년불몽인간훤

 

묵은 길이 적막한데 솔뿌리 얽히었고 하늘 가까와 별을 손으로 만질 듯

 

뜬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절에 온 나그네여 붉은 잎 푸른 이끼에 중은 사립문 닫네

 

썰렁한 가을 바람은 해질녘에 불고 차츰 밝은 산달에 잔나비 울어예네

 

기특해라, 흰 눈썹의 늙은 중이여 여러 해로 시끄러운 세상 꿈꾼 일 없네 *

 

* 한국한시 -김달진역-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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