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목련 시 모음

효림♡ 2010. 4. 16. 08:15

 

* 목련 - 안도현 

징하다, 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
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라는 것 중에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은 울지 말아라//
절반쯤만, 우리 가진 것 절반쯤만 열어놓고

우리는 여기 머무를 일이다//
흐득흐득 세월은 가는 것이니 *

 

* 목련 - 이정하  

당신은 내게

만나자마자 이별부터 가르쳤지요

잎이 돋아나기도 전에

꽃이 지고 마는 목련처럼


당신은 내게

사랑의 기쁨보다 사랑의 고통을

먼저 알게 했지요

며칠간 한껏 아름답다가

끝내 속절없이 떨어지고야 말

저 목련꽃


겨우 알 만했는데

이제사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당신은 어느새 저만치 가버렸네요

그렇게 훌쩍 떠나고 없네요 *

 

* 산목련 - 정우영 

쪼글쪼글해진 손이 젖 탐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옷 섶 헤쳐
봉긋 솟은 젖 꺼내 물린다
하얀 젖꽃판들 오소소 흔들리는
산목련 아래에서 나는 마치
아기나 되는 것처럼 쪼옥쪼옥 젖 빤다
내 입술 오물거릴 적마다
안산은 수유의 오르가슴으로 자지러진다
뽀얀 젖 이리저리 넘쳐흘러
젖무덤과 무덤 사이 골을 적시자
몇백 년은 족히 풍화된 뼈들도
은근슬쩍 입술 쫑긋 내민다
노르무레한 하초에 새 피 돌더니
생의 촉 꼿꼿이 섰다 *

 

* 木蓮 - 김경주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12년 동안 자취(自取)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 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 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

* 김경주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 목련나무 - 도종환
그가 나무에 기대앉아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뜰의 목련나무들이
세차게 이파리를 흔들고 있나 보다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랑이었다
살면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건 사랑이었다
그를 만났을 땐 불꽃 위에서건 얼음 위에서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숯불 같은 살 위에 몸을 던지지도 못했고
시냇물이 강물을 따라가듯
함께 섞여 흘러가지도 못했다
순한 짐승처럼 어울리어 숲이 시키는 대로
벌판이 시키는 대로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은 사랑이 가자는 대로 가지 못하였다
늘 고통스러운 마음뿐
어두운 하늘과 새벽 별빛 사이를 헤매는 마음뿐
고개를 들면 다시 문 앞에 와 서 있곤 했다
그가 어디선가 혼자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목련나무잎이 내 곁에 와 몸부림치고 있나 보다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자목련 - 도종환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떠나버린 육신을 끌어안고
뒤척이던 밤이면
머리맡에서 툭툭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목련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꽃과 나무가
서서히 결별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무 옆에 서 있는 일은 힘겨웠다
스스로 참혹해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오래 고통스러웠다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 백목련꽃 - 위선환

  그걸 알아보라고 했다. 이 피기는 필 것인지를,

꽃 피는 날은 날이 개이고 하늘이 훨씬 가까울 것인

지를, 그런 하늘에서라야 꼭 꽃이 피는지를,

 

  장지에 눌린 창호지가 툭, 툭, 뚫리듯

 

  머리 위 여기저기서 하늘이 뚫린다. 불쑥, 불쑥,

꽃봉오리들이 목을 빼 들이민다. 가득하게 한 입씩

햇살을 베어 문다. 이를테면 지금 백목련꽃이 피었

다. 하늘은 파랗고 저렇게 꽃이 희다.

* 위선환시집[새떼를 베끼다]-문지

 

* 목련꽃 - 김달진

봄이 깊었구나
창 밖에 밤비 소리 잦아지고
나는 언제부터선가
잠 못 자는 병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난밤 목련꽃 세 송이 중
한 송이 떨어졌다.
이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 줄었구나 *

 

* 목련 - 류시화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

 

* 자목련 불루스 - 성기완              

봄날 오후에 할 일도 없는데

자목련이 흐드러져요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서

꽃 한 송이 받은 적 없네요

아 구체적으로 서러워

내 마음

확인도 안 하고 떠나셨죠

봄날 숨 막히는 오후에

퍼플의 물감을 헤프게 쓰는

자목련이 흐드러져요

꼭 당신이 준 것인 양

한 아름에 눈에 들어와

매우 정확히 현실적으로 서운해

구체적으로 서러워

눈물이 나버려 *

 

* 목련 - 김영남

저 배, 내 앞

닻을 내린 저 흰 배

나는 싣지 않고 떠나가것지요//

바다이고

만조의 바다인데

나에게는 썰렁한 바닥과 철조망뿐//

배 들고 있는 것

왜 나는 몰랐을까

물때를 또 어디에 두고 있었을까

눈 감아 모두 뱃놀인데//

꿈에 흐를 듯 저 배

그대 공주 싣고 북쪽 항구로 떠나가것지요

자주색, 뉘 어릴 적 꿈도 망가뜨려놓고 가것지요 *

 

* 목련 - 정일근

나비 날개 같은 부드러운 오수에 빠진 봄날  오후
창문 아래 사월의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누군가 사랑의 전화 버턴을 꼭꼭 누루고 있다
뜨거운 목소리 앚혀진 첫사랑의 귓불을 간지럽히고
화사한 성문이 잠든 몸을 깨워 열꽃의 뜸을 놓는다
누구일까. 저렇게 더운 사랑을 온몸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내려다 보니 없다 아무도 없는 봄날 오후를 배경으로
담장안의 목련만이 저홀로 터지고 있다

 

저녁 - 정일근
아침에 반가사유하던 저 목련, 저녁에 꽃문을 연다
봄날 햇살은 고양이 목덜미 털처럼 따뜻했고
바람은 고양이 목을 쓰다듬는 착한 손길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한낮에 나무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가는
저녁에는 꽃 그늘에서 빛나는 시집을 읽는다
스스로 꽃문을 열어 빛나는 나무의 연꽃들
그 빛에 젖어 함께 부활하는 행간의 아름다운 침묵을
무당벌레 한 마리가 제 꽃등에 지고 돌아온다
세상의 어느 손과 어떤 주술이 꽃문을 열 수 있으랴
꽃의 닫힌 문을 연 봄날 하루는 위대하였으니
하루가 경건한 느낌표로 남아 묵상하는 이 저녁
땅에는 목련꽃이 하늘에는 별이 불을 밝힐 것이다
머지않아 밤 휘파람새가 우듬지로 날아와 노래할 것이다 

 

* 사월 목련 - 도종환 

남들도 나처럼

외로웁지요


남들도 나처럼

흔들리고 있지요


말할 수 없는 것뿐이지요

차라리 아무 말

안하는 것뿐이지요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돌아가는

사월 목련 *

* 도종환시집[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문학동네

 

* 목련꽃 피는 봄날에 - 용혜원
봄 햇살에 간지럼 타
웃음보가 터진 듯
피어나는 목련꽃 앞에
그대가 서면
금방이라도 얼굴이
더 밝아질 것만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행복한 모습 그대로
피어나는 이 꽃을
그대에게 한아름
선물할 수는 없지만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봄날은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아름답기에
꽃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활짝 피어나는 목련꽃들이
그대 마음에
웃음 보따리를
한아름 선물합니다
  
목련꽃 피어나는 거리를
그대와 함께 걸으면 행복합니다
  
우리들의 사랑도 함께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

* 용혜원시집[용혜원의 시]-나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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