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차창룡 시 모음

효림♡ 2010. 4. 29. 08:08

 

* 내소사, 선운사, 동불암 똘감 - 차창룡  
내가 확인한 바로는 
내소사, 선운사, 동불암 스님들은 먹고살 만하다
그 먹음직한 똘감을 하나도 먹지 않고 놔두다니
그곳 스님들은 배가 충분히 부르거나
대단히 게으르다
왜 저 맛있는 똘감을 따지 않죠?
저건 새들의 밥이에요
스님들은 둘러대기도 잘한다
보이는 것만 따먹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도 따먹어야죠
배부른 까치들도 깔깔거린다
까치들이 단단해진 배로 범종을 치니
여기는 채석강, 여기는 적벽강
, 여기는 법성포
조개들이 일제히 입을 벌려 짹짹거린다
갈매기가 미사일처럼 날아들 때 *

* 차창룡시집[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 고시원은 괜찮아요
이 선원의 선승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혼자이지요
홀로 존귀한 최고의 선승들입니다
108개의 선방에는 선승이 꼭 한명씩만 들어갈 수 있어요
여느 선방과 달리 방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잠을 자든 공부를 하든 밥을 먹든 자위행위를 하든
혼자서 하는 일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가끔 심한 소음이 있어도 자기 일이 아니면 가급적
상관하지 않습니다 정 참지 못하면
총무스님에게 호소하면 됩니다
중국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그리고 한국
식탁에는 온통 외국인뿐입니다
이곳은 외국인을 위한 선원인 것이지요
금지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양간에 함께 모인 선승들은 말이 없습니다
말은커녕 입도 벌리지 않고
그들은 밥을 몸속으로 밀어넣습니다
다년간 수행한 덕분이지요
오래 수행한 선승일수록 공양할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뱃속으로 고요의 강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면
가끔 화장실에 갑니다 화장실은 늘 만원입니다
괜찮습니다 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법이니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불이 나도 괜찮아요
13호실에 비상용 사다리가 있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미덕이 습관이 되어
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는 일에도 끼어들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불이 나도 어차피 열반에 들면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요 *

* 차창룡시집[고시원은 괜찮아요]-창비 

 

* 그것이 아픔이라는 걸 모르고
아스팔트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주워
죽어가는 관음죽 화분에 올려놓았더니
도토리의 대가리를 뚫고
나무 한 마리 솟아올랐다
저러이 둥근 알 속에 사방으로 가지치는
인연이 숨어 있었다니
벌레들 허공 그리고 흙은
도토리에서 연방 내장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것이 아픔인 줄 알면서도 *

 

* 죽어야만 이루어지는 사랑
갠지스 강물 위에 불꽃 떠가네
히말라야의 얼음이 녹아 흐르는 차가운 강물은
불꽃을 사랑하여 꼭 껴안아주고 싶지만
껴안으면 불꽃은 곧 죽고 만다네
뜨거운 햇살에 검게 탄 손으로 띄운 불꽃은
강물을 사랑하여 그 젖가슴 물고 싶지만
그러면 곧 죽고 만다네
강물은 불꽃을 데불고 흘러갈 뿐
불꽃은 강물이 가는 곳을 좇아갈 뿐
마침내 불꽃이 수명을 다하면
강물은 그 시신 고이 안아
부드러운 젖가슴 물려주네

 

* 나무 물고기 

물고기는 죽은 후 나무의 몸을 입어

영원히 물고기 되고
나무는 죽은 후 물고기의 몸을 입어
여의주 입에 물고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으니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나무는
날마다 두들겨 맞는다

여의주 뱉으라는 스님의 몽둥이는 꼭
새벽 위통처럼 찾아와 세상을 파괴한다
파괴된 세상은 언제나처럼 멀쩡하다

오늘도 이빨 하나가 부러지고 비늘 하나가
떨어져나갔지만 *

* 차창룡시집[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 목탁  2  

몇억 광년의 세월을 흘러 별빛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속도는 보이지 않는 소리이다

날아가라 어서 목탁소리여
이 목탁 닳고 닳아 먼지가 되면
돌아오리 보이지 않는 속도로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며

아득한 광년의 거리 너머
빠른 속도로 천천히 떨어지는 목탁소리
별은 먼지이므로
눈에 들어가 눈물 흘려보낸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여준다

 
* 선암사 목어
   어느 날 깨어나보니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몸은 잉어였다. 물고기인 나는 헤엄을 쳐야 했지만, 커다란 나무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밤에는 눈 감고 잠을 자고 싶었으나, 물고기 눈은 절대 감을 수가 없었으니, 나는 항상 깨어 있어야 했으며, 그리하여 늘 참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참선의 공덕으로 등에 솟아난 나무가 내 몸으로 들어왔고,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었다. 거추장스런 내장을 다 치우고 보니 나의 뱃속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장한 허공이 들어찼다. 내 뱃속을 막대기로 두들기면 모든 사람들은 눈을 떴고, 물고기들의 몸에서는 나무가 자라올랐다. 사람들을 깨우고 물고기를 괴롭히는 것이 하 나는 즐거워, 아침저녁으로 두들겨댄 뱃속의 허공은 자꾸만 깊어만 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나의 몸은 바람에 깎이고 세월에게 먹히어 서서히 없어져가고 있었다. 없어져가는 나의 몸 속에서는 언제부턴가 새로운 욕심이 새록새록 자라오르기 시작했는데, 아마 뱃속에 허공이 들어찼던 무럽부터였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용(龍)이 되는 것이었다. 용이 되기 위해서는 섬진강을 거슬러올라 용문(龍門)*이라는 가파른 협곡을 뛰어올라야 했다.
   복숭아꽃 필 무렵 나는 강을 거스르고 거슬러 용문에 다다랐는데, 무려 삼천 번을 시도했으나 말짱 도루묵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나의 비늘이 붉게 물들고 나서야 겨우 용문을 뛰어올라 여의주를 입에 물었다. 나의 머리는 용이 되었으나, 아직 용이 되지 못한 물고기들에게 잠깐 연민의 정을 느낀 탓으로 몸뚱이는 그만 물고기로 남게 되었다. 물고기와 나무와 용의 몸을 한꺼번에 짊어진 나의 몸은 한껏 고달프다. 새벽마다 용울음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뜨고, 눈뜬 물고기들의 새벽잠을 깨워야 한다. 나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의 등에는 나무가 솟아오른다.

   어느 날 깨어나보니 나의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몸은 붕어였다. *

* 용문 - 후한서(後漢書)에 전하기를, 중국 황하의 상류에는 용문(龍門)이라는 거센 급류의 협곡이 있었는데, 많은 잉어들이 물살을 거슬러오르다 거기서 좌절했다 한다. 만약 이 급류를 통과하면 용이 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등용문(登龍門) 이라는 말이 생겼다.

 

* 눈  

바다로 흘러가버리던 당신의 사랑이

오늘 이렇게 소복이 쌓여 있으니

세상 곳곳이 당신의 몸이어서 황홀함 한량없지만

차마 당신의 몸 밟고 갈 수 없음이여

 

빗자루로 당신의 몸 쓸어 한쪽으로 치우며

사랑은 결국 아픔임을 확인하고야 뼈저리다

바다로 흘러가버린 당신의 전생이

전생이 아니라 생생한 현생임을 알알이 만지면서

 

당신은 이렇게 사랑을 새하얗게 증명해야 했던가

미처 쓸지 못한 당신의 몸은 사람의 발에 밟혀

반들반들한 미끌미끌한 투명해지는 얼음

당신은 이렇게 사랑을 견고하게 증명해야 했던가

 

알 수 없다는 나의 표정이 당신의 얼굴에 비칠 때

당신은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듯 땅위에 쌓였지만 끝내는

눈물을 데불고 바다로 흘러가는 사랑이여

 

* 안녕, 오늘이여
오늘을 보내면 내일이 올까

너무 춥다 수남이 형 떠나는 날
안녕, 이별의 인사가 그립다
이제는 기침도 멈춘 청춘의 각혈아
무덤 하나도 짊어지지 않은 가벼운
뼛가루야, 너 밤새 눈으로 내려
이별은 이토록 미끄럽구나
젊은 햇살마저 주르륵 미끄러져
흔들리는 풍경 소리에 빠지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사랑일 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다

차가운 오늘을 짊어지고 가볍게
벌써 알고 지낸 이처럼 뼛가루는
마른 풀과 친해지는구나
안녕, 손도 흔들지 않는 이별이
두렵지도 않은지, 바람에 휙 날아가
입술이 검게 튼 이끼
뼈만 남은 겨울을 사랑하네
뼈도 못 추릴 이별도 모르는지

안녕, 오늘이여
오늘을 보내면 또 오늘이 올까 * 

 

* 상카샤 

우리의 사랑은 신화입니다

마치 사실이 아닌 것 같지요

사실인 것 같은 사실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신화 같은 사실이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신화입니다 

 

당신이 훌쩍 떠나실 때

우리는 당신을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어느 곳으로 가신지 몰랐을 때

우리를 정녕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우리를 만나고 계셨습니다

새로운 사랑은 새로운 신화를 만듭니다

우리의 사랑은 신화입니다

 

* 달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간다

 

간다는 것은 작아진다는 것

간다는 것은 커진다는 것

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

 

시간은

어린 짐승이 크는 것을 바라보는 것

다 큰 짐승이

작아지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

 

시간만큼 무거운 것은 없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여서

시간을 들고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본이다

 

길 아닌 길을 지우며 우리는

오늘도 간다 *

* 차창룡시집[벼랑 위의 사랑]-민음사 

 

* 벼랑 위의 사랑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시작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벼랑은 내 마음의 거주지,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부화 직전의 알처럼

벼랑은 위태롭고도 아름다워, 야윈 상수리 가지 붙잡고

날아올라라 나의 마음이여, 너의 부푼 가슴에 날개 있으니 

 

일촉즉발의 사랑이어라, 세상은 온통 양귀비의 향기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신과 나는 벼랑에서 떨어졌고

세상은 우리를 받쳐 주지 않았다. 피가 튀는 사랑이여

계곡은 태양이 끓는 용광로, 사랑은 그래도 녹지 않았구나 

 

버릇처럼 벼랑 위로 돌아왔지만, 벼랑이란 보이지 않게 무너지는 법

평생 벼랑에서 살 수는 없어, 당신은 내 마음을 떠나고 있었다

떠나는 이의 힘은 붙잡을수록 세지는 법인지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끝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내 마음은 항상 낭떠러지였다, 어차피 죽을 용기도 없는 것들아

벼랑은 암시랑토 않다는 표정으로 다투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 

* 차창룡시집[벼랑 위의 사랑]-민음사 

 

* 첫사랑

안개 속에서 부들솜 같은

안개의 입자를 만진다 다시

첫경험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이 살그래

바다로 흘러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들어 있던 파도에서 피어나는

꽃숭어리

다시

안개가 덮어준다

 

안개에 밀려 안개가 걷힌다 *

* 차창룡시집[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 차창룡(車昌龍)시인, 스님

-1966년 전남 곡성 출생
-1989년 [문학과 사회]에 시를 발표 1994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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