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장마 시 모음

효림♡ 2010. 6. 21. 08:20
* 장마 - 김사인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긴 긴 장마 *

* 김사인시집[가만히 좋아하는]-창비

 

* 장마 - 나태주 
하늘이여 하늘이여 하늘이시여
억수로 비 쏟아져 땅을 휩쓸던 날 *

 

장마 - 신경림 
온 집안에 퀴퀴한 돼지 비린내 
사무실패들이 이장집 사랑방에서 
중톳을 잡아 날궂이를 벌인 덕에 
우리들 한산 인부는 헛간에 죽치고 
개평 돼지 비계를 새우젓에 찍는다 
끝발나던 금광 시절 요리집 얘기 끝에 
음담패설로 신바람이 나다가도 
벌써 여니레째 비가 쏟아져 
담배도 전표도 바닥난 주머니 
작업복과 뼛속까지 스미는 곰팡내 
술이 얼근히 오르면 가마니짝 위에서 
국수내기 나이롱뻥을 치고는 
비닐 우산으로 머리를 가리고 
텅빈 공사장엘 올라가 본다 
물 구경 나온 아낙네들은 우릴 피해 
녹슨 트럭터 뒤에 가 숨고 
그 유월에 아들을 잃은 밥집 할머니가 
넋을 잃고 앉아 비를 맞는 장마철 
서형은 바람기 있는 여편네 걱정을 하고 
박서방은 끝내 못 사준 딸년의 
살이 비치는 그 양말 타령을 늘어 놓는다

 

장마 - 문인수
비는 하염없이 마당귀에 서서 머뭇거리고
툇마루에 앉아있으니 습습하다
못깃 터는 비둘기 울음 습습하다
어둑신한 헛간냄새 습습한다

거미란 놈이 자꾸 길게 처져 내렸다
제 자리로 또 무겁게 기어 올라간다
두꺼비 한 마리가 느리게 가로질러 가는...

어머니 콩 볶으신다

비는 하염없이 마당귀에 서서 머뭇거리고 *

 

* 장마 - 안도현 
神은 처마 끝에 주렴을 쳐놓고
먹장구름 뒤로 숨었다

빗줄기를 마당에 세워두고
이제, 수렴청정이다

산골짝 오두막에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왕이다

나, 장마비 어깨에 걸치고 언제 한번 철벅철벅 걸어다녀를 봤나
천둥처럼 나무 위에 기어올라가 으악, 소리 한번 질러나 봤나

부엌에서 고추전 부치는 냄새가 올라올 때까지
구름 뒤에 숨은 神이 내려올 때까지
나는 게으르고 게으른 사내가 되려 한다 *

* 안도현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 장마 끝물 - 장석남
산 넘어 온 비가
산 넘어 간다
비단옷으로 와서
무명옷으로 간다

들 건너 온 비가
들 건너 간다
하품으로 와서
진저리로 간다

물 건너 온 비가
물결 건너 간다
뛰어온 비가
배를 깔고 간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국밥집에 마주앉은
가난한 연인의 뚝배기가 식듯이
이슬비가 되어서
비가 간다

 

* 오래된 장마 - 정끝별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잠기고 뒤집힌다는 것 
눈물 바다가 된다는 것 
둥둥 
뿌리 뽑힌다는 것 
사태지고 두절된다는 것 
물벼락 고기들이 창궐한다는 것 
어린 낙과들이 
바닥을 친다는 것 

때로 사랑에 가까워진다는 것 

울면, 쏟아질까? 

 

* 장마 - 김종제

한 사나흘

바람 불고 비만 내려라
꿈결에서도 찾아와
창문 흔들면서
내안에 물 흘러가는 소리 들려라
햇빛 맑은 날 많았으니
아침부터 흐려지고 비 내린다고
세상이 전부 어두워지겠느냐
저렇게 밖에 나와 서 있는 것들
축축하게 젖는다고
어디 갖다 버리기야 하겠느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에게 다 젖고 싶은
그 한 사람이 내게는 없구나
문 열고 나가
몸 맡길 용기도 없는 게지
아니 내가 장마였을 게다
나로 인해
아침부터 날 어두워진 것들
적지 않았을 테고
나 때문에 눈물로 젖은 것들
셀 수 없었으리라
깊은 물속을 걸어가려니
발걸음 떼기가 그리 쉽지 않았겠지
바싹 달라붙은 마음으로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졌을 거고
그러하니 평생 줄 사랑을
한 사나흘
장마처럼 그대에게 내릴테니
속까지 다 젖어 보자는 거다

 

* 건들장마 - 박용래

건들장마 해거름 갈잎 버들붕어 꾸러미 들고 원두막
처마밑 잠시 섰는 아이 함초롬 젖어 말아올린 베잠방이
알종아리 총총 걸음 건들장마 상치 상치 꽃대궁 白髮의
꽃대궁 아욱 아욱 꽃대궁 白髮의 꽃대궁 고향 사람들

바자울 세우고 외넝쿨 거두고 *

 

* 장마 - 천상병

7월 장마 비오는 세상

다 함께 기 죽은 표정들

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

 

이런날 회상(回想)은 안성맞춤
옛친구 얼굴 아슴프레 하고
지금에사 그들 뭘 하고 있는가?

뜰에 핀 장미는 빨갛고

지붕밑 제비집은 새끼 세 마리
치어다 보며 이것저것 아프게 느낀다

빗발과 빗발새에 보얗게 아롱지는

젊디 젊은 날의 눈물이요 사랑

이 초로(初老)의 심사(心思) 안타까워라 ㅡ
오늘 못다하면 내일이라고
그런 되풀이, 눈앞 60고개
어이할거나
이 초로의 불타는 회한(悔恨) ㅡ
 

* 장마 - 천상병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다오 *

 

* 장마 - 오탁번 

푸렇게 일어서는 천둥산의 아침

예배당의 지붕 위에서

귀 달린 구렁이가 꿈틀거린다

돌담의 냄새 옆에는

푸득거리는 한 그루 느티나무

여름벌레들이 떨어져 흘러간다

산수숙젠는 정말 어려웠다

순이의 몽당연필도

곤두서서 산으로 뛰어가고

모두 다 입을 다물고

벌레가 개울을 이룬다

얼마 곱하기 얼마는 얼마

얼마 곱하기 얼마는 얼마

아침은 발목까지 빠져서

다 젖는다 다 젖는다.

귀를 앓은 구렁이가 기어다닌다 *

 

* 장마 - 조예린

저 칠월 장마비는

무엇을 적시려고

저리

오는가

젖은 가슴

곰팡이 꽃

이미 찬란한데

 

아으 동동다리

무엇을 적시려고

님 생각

내 눈물은

이리 오는가 *

 

* 7월령-장마 - 유안진

칠칠한 머리채 풀어
목을 놓아 울고 싶구나

뼈가 녹고 살이 흐물도록
이승 너머 저승까지

 

모질게 매듭진 인연
그만 녹여 풀고 싶구나 *

 

* 장마전선 - 이외수

흐린 날

누군가의 영혼이

내 관절 속에 들어와 울고 있다

내게서 버림받은 모든 것들은

내게서 아픔으로 못박히나니

이 세상 그늘진 어디쯤에서

누가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가

저린 뼈로 저린 뼈로 울고 있는가

대숲 가득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

 

* 장마 - 도종환 
내 안엔 망망한 물살에 떨어진 나를 싣고 가는
나룻배 한 척이 있고
겨우 허리를 드는 풀잎 같은 것들을
다시 두들겨패는 빗줄기와 먹구름 있다

내 안엔 나 아닌 돌맹이 하나까지
다 씻기고 매만지는 개울물 있고
옆구리 걷어차며 쏟아져 나오는 흙탕물 있다

저희끼리 뒤엉켜 흘러가다
늪 근처에 내 몸을 버려둔 채 다투느라
장맛비 끝없는 날이 있고

젖은 숲의 머리칼 털어 말리고
숙인 꽃의 이마를 맑게 들어올리는
청명한 햇살이 있다

어제 아침엔 는개비 뿌리는
고요한 들판 끝에 나를 홀로 있게 하더니
오늘은 굽이치는 계곡물 근처에
나를 다시 던져놓고 가버리는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 久雨 - 丁若鏞 

窮居罕人事 -- 궁거한인사  恒日廢衣冠 -- 항일폐의관 

敗屋香娘墜 -- 패옥향낭추  荒畦腐脾殘 -- 황휴부비잔  

睡因多病減 -- 수인다병감  愁賴著書寬 -- 수뢰저서관 

久雨何須苦 -- 구우하수고  晴時也自歎 -- 청시야자탄   

* 장마  

어렵게 살다보니 찾는 이 드물어 언제나 의관도 갖추지 않고 있네 

낡은 지붕에선 노래기 떨어지고 거친 밭두렁엔 팥꽃만 남아 있네

병 많으니 자연히 잠은 적어지고 글을 짓는 일로 수심을 달래보내

장마 길다하여 괴로울 것 없으니 맑은 날도 혼자서 탄식하는 것을 *

 

* 苦雨歎· - 若鏞 

苦雨苦雨雨故來 -- 고우고우우고래   白日不出雲不開  -- 백일불출운불개
大麥生芽小麥臥 -- 대맥생아소맥와   
只肥鼠梨與雀梅 -- 지비서리여작매
村童食之酸沁骨 -- 촌동식지산비골   
麥臥不起誰知哉 -- 맥와불기수지재      
* 지겨운 비를 탄식함 
괴로운 비 괴로운 비 그리도 내려 밝은 해 안 나오고 구름도 안 열리네
보리는 싹이 나고 밀도 가로눕는데 돌배와 산앵두만 커가는구나
아이들 따먹어 신 물만 뼈에 스며도
밀 보리 일어서지 못함을 어찌 알랴 *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팔꽃 시 모음  (0) 2010.07.01
이건청 시 모음  (0) 2010.06.25
박몽구 시 모음  (0) 2010.06.14
자전거 시 모음  (0) 2010.06.07
6월 시 모음  (0) 201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