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큰 스님 말씀 - 김주대

효림♡ 2010. 6. 28. 08:11

* 큰스님 말씀 - 김주대   

풍경소리 약사전 뒷마당 산목련 하얗게 피고 지는데 전쟁에서 수만 명을 이긴 자보다 나를 이긴 자가 승리자라며

바람도 여기는 와서 큰스님 말씀 속에 잠드는데

어쩌자고 답답한 가슴 타는 불길 누굴 이기겠다고 침울했으며 누굴 이겼다고 즐거웠는지

꽃에게 묻고 바람에게 산새에게 약사전 불전함 옆 촛불에 묻고

연못 아래 물풀을 안고 잠든 바람도 스스로의 꿈 속에서만 물결같이 고운 연꽃을 피우는데

내가 피우려던 꿈 혹시 누굴 이기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밤마다 찾아 돌며 울던 술집들

혼자라고 생각했던 폭음과 주정의 시간들 여기서는 와서 시가 되지 않아도 되는지

멀리 돌아 바람처럼 연못 아래 눕고 촛불처럼 아프게 스스로를 태우며

산목련 꽃잎으로 잠들어 나를 이긴 자가 나이기를

산목련 풍경소리에 꿈꾸어도 되는지 *

 

* 스승과 제자 2 
10년 만에 우연히 본 제자를 멀리서 선생님께서 소리소리 부르시더란다
"규하야아 규하야. 빨리 여 좀 와봐 어여. 빨리! 빨리이!"
무슨 큰일 난 줄 안 규하는 하던 일 멈추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달려갔다고 한다
"선생니-임 부르셨슴미까?"
"응. 그래에...음...그냥 한번 불러바써. 졸업해도 내 말 잘 듣넝가 볼라꼬!"
그러시고는 선생님 가시던 길 가시더란다
규하는 선생님의 뒷모습만 또 마냥 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고 *
 

* 살며-시

노란 K마트 조끼를 입은 청년이

주차장 계단에, 먹다 남은 빵 조각과

앉은잠을 자고 있었다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세 칸 계단에 묻어 있는 곤한 잠을

쓸지 않고 살며-시 지나갔다 *

 

* 신혼부부

위층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저것들은 사랑하고 있다

 

걱정할 것 없다 *

 

* 동거  

생각난다
신당동 중앙시장
팥 적은 붕어빵과 곱창으로 넘긴
그해 겨울의 저녁과 아침
시골 여상 출신의 그대가
졸음 쏟아지는 미싱대에서
주판알 대신 올리고 내리던 기래빠시 천과
얇은 홑이불의 동거 시절
생각난다
반찬 없이 행복했던
우리들의 겸상과
조금 어색해서 더 사랑스러웠던
첫날밤이
신당동 가다보면
들려온다
미싱 도는 소리
그대 숨소리
세상 한쪽에서
그대가 그대를 찢고
그대를 이어가는 소리 *

 

* 슬픈 속도  

새벽
아버지의 칼을 피해 도망치던 어머니처럼
고주망태 아버지의 잠든 틈을 타 잽싸게 칼을 숨기던 형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녀석의 그림자

 

돌아보면
모든 속도가 슬프다 *

 

* 생선장수 박씨 
화곡극장 정사 장면 그림판 앞, 생선 다라이 이고 박씨
아주머니 가는데 고기비늘 묻은 치마 펄럭이며 이른 아침
가는데, 생선 다라이에서 소금 몇 알씩 떨어진다. 썩고 썩
은 게으른 세상으로 *

 

* 김주대시집[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시작 

 

* 김주대 시인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 [꽃이 너를 지운다].....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옆을 보라 - 이원규  (0) 2010.07.01
해는 기울고 - 김규동  (0) 2010.06.28
늘보의 특강 - 김추인  (0) 2010.06.25
투명한 속 - 이하석  (0) 2010.06.25
행방 - 이영옥   (0) 2010.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