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조오현 시 모음

효림♡ 2010. 7. 23. 08:11

* 아득한 성자 - 조오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하루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 조오현시집[아득한 성자]-시학

* 2007년 제19회 지용문학상 수상시

 

* 아지랑이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

* 조오현시집[아득한 성자]-시학

* 2008년 제16회 공초문학상 수상시

 

* 무자화(無字話) -부처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

 

* 내가 나를 바라보니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

 

* 파도 
밤늦도록 불경(佛經)을 보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

 

* 인천만 낙조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 때나 썰물 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네 *

 

* 산에 사는 날에 
나이는 뉘였뉘였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 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일이다 *

 

* 계림사 가는 길

게림사 외길 사십 리 허우단심 가노라면
초록산(草綠山) 먹뻐꾸기가 옷섶에 배이누나
이마에 맺힌 땀방울 흰구름도 빛나고

 

물따라 산이 가고 산따라 흐르는 물
세월이 덧없거니 절로 이는 산수간에
말없이 풀어논 가슴 열릴 법도 하다마는

한벌 먹물 옷도 내 어깨에 무거운데
눈감은 백팔염주 죄일사 목에 걸어
이 밝은 날빛에 서도 발길이 어두운가

어느 골 깊은 산꽃 홀로 피어 웃는 걸까
대숲에 이는 바람 솔숲에 와 잠든 날을
청산에 큰 절 드리며 나 여기를 왔고나 *


* 절간이야기 3 
득한 옛날의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요 근년에 비구니스님들이 모여 공부하는 암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물론 숲속에 파묻힌 돌담 주춧돌도, 천년 고탑도 비스듬한 그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밟히고 먹뻐꾹 울음소리가 옷자락에 배어드는 심산의 암자이지요. 그 암자의 마당 끝 계류가에는 생남불공(生男佛供) 왔던 아낙네들이 코를 뜯어먹어 콧잔등이 반만큼 떨어져나간, 그래서 웃을 때는 우는 것 같고 정작 울 때는 웃는 것 같은 석불도 있지요. 어떻게 보면 암자가 없었으면 좋을 뻔했던 그 두루적막 속에서 20년을 살았다는 노비구니스님이 그해 늦가을 그 석불 곁에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자기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을 때 다람쥐 두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돌담 속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옳거니! 돌담 속에는 도토리가 많겠구나. 묵을 해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먹어야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중얼거린 노비구니스님이 돌담을 허물어뜨리고 보니 과연 그 속에서는 도토리가 한 가마는 좋게 나왔지요. 그런데 그 한 가마나 되는 도토리를 몽땅 꺼내어 묵을 해 먹었던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놈의 다람쥐 두 마리가 노비구니스님의 흰고무신을 뜯어먹고 있었답니다. 그 흰고무신을 뜯어먹다가 죽었답니다 * 

* 절간이야기 25

나는 부처를 팔고
그대는 몸을 팔고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고.....
밤마다 물 위로 달이 지나가지만
마음 머무르지 않고 그림자 남기지 않는도다 *
 

* 절간이야기 29

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게 되겠습니까 *

 

* 절간이야기 30

우리 절 밭두렁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 *

 

* 절간 이야기 31
어느 날 아침 게으른 세수를 하고 대야의 물을 버리기 위해 담장가로 갔더니 때마침 풀섶에 앉았던 청개구리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담장 높이만큼이나 폴짝 뛰어오르더니 거기 담쟁이덩굴에 살푼 앉는가 했더니 어느 사이 미끄러지듯 잎 뒤에 바짝 엎드려 숨을 할딱거리는 것을 보고 그놈 참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감탄을 연거푸 했지만 그놈 청개구리를 제(題)하여 시조 한 수를 지어 보려고 며칠을 끙끙거렸지만 끝내 짓지 못하였습니다. 그놈 청개구리 한 마리의 삶을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몇 겁(劫)을 두고 찬미할지라도 다 찬미할 수 없음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습니다 *

 

* 비슬산 가는 길 
비슬산 굽이 길을 스님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萬)첩첩 두루 적막(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

 

* 침목 (枕木)

아무리 어두운 세상을 만나 억눌려 산다 해도

쓸모없을 때는 버림을 받을지라도

나 또한 긴 역사의 궤도를 바친

한 토막 枕木인 것을, 年代인 것을

 

영원한 고향으로 끝내 남아 있어야 할

태백산 기슭에서 썩어가는 그루터기여

사는 날 지축이 흔들리는 진동도 있는 것을

 

보아라, 살기 위하여 다만 살기 위하여

얼마만큼 진실했던 뼈들이 부러졌는가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파묻혀 사는가를

 

비록 그게 군림에 의한 노역일지라도

자칫 붕괴할 것만 같은 내려앉은 이 지반을

끝끝내 바쳐온 이 있어

하늘이 있는 것을, 역사가 있는 것을 *

 

* 내가 죽어보는 날 
부음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그 길에서 헤어졌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길,
뼛가루도 뿌려본다 *

 

* 무설설(無說說) 1

강원도 어성전 옹장이

김영감 장롓날


  상제도 복인도 없었는데요 30년 전에 죽은 그의 부인 머리 풀고 상여 잡고 곡하기를 "보이소 보이소 불집 같은 노염이라도 날 주고 가소 날 주고 가소"했다는데요 죽은 김영감 답하기를 "내 노염은 옹기로 옹기로 다 만들었다 다 만들었다"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사실은

그날 상두꾼들

소리였데요 *

 

* 조오현시인, 스님 

-1932년 경남 밀양 출생 법명 무산 자호는 설악, 1998~ 대한불교조계종 백담사 회주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2007년 지용문학상, 2008년 공초문학상 수상

-시집 [심우도][설악시조집][아득한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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