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산(山) 시 모음

효림♡ 2010. 7. 27. 08:10

둘레 - 박용래

산은 

산빛이 있어 좋다

먼 산 가차운 산

가차운 산에

버들꽃이 흩날린다

먼 산에

저녁해가 부시다

아, 산은

둘레마저 가득해 좋다 *

 

* 山 길 - 조지훈

혼자서 산길을 간다. 풀도 나무도 바위도 구름도 모두 무슨 얘기를 속삭이는데
산새 소리조차 나의 알음알이로는 풀이할 수가 없다

바다로 흘러가는 산골 물소리만이 깊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그저 아득해지는 내 마음의 길을 열어 준다

이따금 내 손끝에 나의 발가숭이 영혼이 부딪쳐
푸른 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고 나의 마음에는 한나절 소낙비가 쏟아진다 *

 

* 일월(日月)속에서 - 박재삼
산은 항상 말이 없고
강은 골짜기에 갈수록 소리내어 흐른다
이 두 다른 갈래가
그러나 조화를 이루어
얼굴이 다르지만 화목한 영위(營爲)로
나가고 있음을 본다
세상이 생기고부터 
짜증도 안내고 그런다
이 가을 햇빛 속에서
단풍빛으로 물든 산은 
높이 솟아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반짝이는 노릇만으로
그들의 존재를 없는 듯이 알리나니
 
이 천편일률(千篇一律)로 똑같은
쳇바퀴 같은 되풀이의 일월(日月) 속에서
그러나 언제나 새로움을 열고 있는
이 비밀을 못 캔 채
나는 드디어 나이 오십을 넘겼다 *

 

산에게 나무에게 - 김남조  

산은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산을 찾아갔네

나무도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섰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은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왔네

그들은 주인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

 

산은 책이다 - 이생진  

산은 뜻깊은 책이다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수려한 문장

구름을 읽다가 바위 곁으로 가고

바위를 읽다가 다시 구름 곁으로 간다

 

큰산 가는 길 - 도종환

큰산으로 가는 길에는 깊은 물이 있다

물은 큰산을 품어 더욱 깊어지고

산은 물을 따라 내려가 더욱 맑아진다

마음이 크다는 것은 마음이 깊다는 것이다

마음이 깊다는 것은 마음이 맑다는 것이다 *

 

* 산 이야기 - 도종환  

많은 이들이 저마다 그 산을 가보았다고 합니다

치렁치렁 유려하게 벋어내린 산줄기를 대하던 이야기며

장엄한 산의 목소리를 듣고 와 벅차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산이 기슭마다 품고 있는 곧게 자란 나무의 숫자보다

더 많은 선지식을 산에서 거두어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 위를 반짝이며 내려가는 햇살보다

더 많은 예찬의 언어들로 감겨 있는 광경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찾아가 만난 산은 깊은 곳에

오래 된 암자 하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청향처럼 은은한 풍경소리만이 추녀 끝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산을 향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산을 만나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소리도 분주합니다

그러나 저는 독경소리 들으며 소리없이 피던

꽃다지 몇송이 생각합니다

차고 정갈한 샘물 속에 누워

풍경소리에도 살을 떨던 갈잎 몇장 생각합니다

 

* 산마저 나를 버린다 - 류시화  

산마저 나를 버린다

산이 나를 오라 해서

모든 것 버리고 산으로 갔더니

산마저 나를 돌아가라 한다


저 산은 자꾸만 내게서 돌아눕고

나는 자꾸만 산쪽으로 돌아눕고


문득 산안개 가려 길 보이지 않네 * 

 

* 행복 - 허형만
지리산에 오르는 자는 안다
천왕봉에 올라서는
천왕봉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천왕봉을 보려거든
제석봉이나 중봉에서만
또렷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매한가지여서
오늘도 나는 모든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
순해진 귀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행복해 하고 있다 *

* 허형만시집[첫차]-황금알

 

 * 산 - 정희성
가까이 갈 수 없어
먼발치에 서서 보고 돌아왔다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마냥
산이 어디 안 가고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

* 정희성시집[돌아보면 문득]-창비 

 

* 겨울산 - 문현미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라니
영하의 묵언 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세운다
온 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

 

* 여름산 - 장석남
둥글게 휜 풀잎의 둥긂
둥긂 위에 앉은 잠자리의 투명
투명 위에 앉은 여름산

비 온 뒤
이목구비 뚜렷한
여름산 메아리 속으로
먼 훗날 살 집을
걸려 보낸다

둥글게 휜 풀잎의 둥긂
둥긂 위에 앉은
이슬과 해와,
발자국 *

 

* 지리산 -배낭을 꾸리며 - 이향지  
내가 당신을 향해  
"기러기!"  
하고 부르면  
그 작고 가벼운 것 되어  
날아와 주겠습니까  
 
내가 먼 당신을 향해  
"강물!"  
하고 부르면  
그 길고 맑은 것 되어  
달려와 주겠습니까  
 
당신은 무거우니 내가 찾아가려고  
내게로 온 계절을 잊고  
딱딱한 뼈를 버리고  
 
당신은 그리움 모르니 내가  
달려가려고  
 
그리우면 그리운 쪽에서  
그 작고 가벼운 것 되어  
그 길고 맑은 것 되어 * 
* 이향지시집[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나남출판  


* 산에 사는 날에 - 조오현스님
나이는 뉘였뉘였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 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일이다 *

 

* 설악 - 제갈태일  

내설악 외설악이 어깨너머 기웃거리며 자주치마 오색저고리 차례차례 벗어 던지고 있었어

 

속살을 드러내는 붉은 계곡이 원색으로 물들 이맘때면, 울산바위 우람한 근육질이 드러나고 마등령 애무하던 장군바위 꼿꼿한 근육질도 하늘로 치솟을 이맘때면, 옷을 벗은 잣나무 떡깔나무 물푸레나무 나무들이 중추신경 흔들며 뜨거운 채취로 소청봉 대청봉 계곡으로 다가갈 이맘때면

 

설악은 오르가즘에 젖어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

 

* 도봉산 - 정연복 

굽이굽이
길 다란 능선들의
저 육중한 몸뚱이
하늘아래 퍼질러 누워
그저 햇살이나 쪼이고
바람과 노니는 듯
빈둥빈둥
게으름이나 피우는 듯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틈에
너의 온 몸
연둣빛 생명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가
정중동(靜中動)
고요함 속
너의 찬란한 목숨 *

 

* 산 - 김규동  

명산 아닌
그 산이
두어 점 구름 아래
조용히 누웠는 이름 없는 그 산이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햇살이 부서져
황금빛으로 물든
오솔길에는
빨갛게 익은 열구밥이
정물화같이
푸른 대기 가운데 고정되었다

 

바람과 짐승과 안개가
산 저편으로 잦아든 뒤
해 기울고
소달구지 하나 지나지 않는
신작로길이
영원처럼 멀었다

 

바다 우짖음 소리도
강물의 고요한 숨결도
알지 못하나
소박한 자태로 하여
쓸쓸한 기쁨 안겨주던 산
어린 나를 키워준 산이
탕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시여
너의 고뇌와 눈물의 아름다움
그리워하지 않은 때 없으나
이룬 것 없이
죄만 쌓여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고향 하늘

 

아, 철없이 나선
유랑길
몸은 병들어 초라하기 짝이 없으나
받아주리라 용서해주리라 너만은
이름 없는 나의 산. * 

 

* 산 - 김영석 
아주 먼 옛날
가슴이 너무나 무겁고 답답하여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한 사내가
밤낮으로 길을 내달려
마침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 끝에 이르렀습니다
그 길 끝에
사내는 무거운 짐을 모두 부렸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은 길 끝에 이르러
저마다 지니고 있던 짐을 부리기 시작하고
짐은 무겁게 쌓이고 쌓여
산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길 끝에
높고 낮은 산들이 되었습니다 *

 

* 겨울산 -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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