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자화상 시 모음

효림♡ 2010. 7. 29. 12:18

* 자상(自像) - 이상 

여기는어느나라의데드마스크다.   데드마스크는도적(盜賊)맞았다는소문도있다.   풀이극북(極北)에서파과(破瓜)하지않던이수염은절망(絶望)을알아차리고생식(生殖)하지않는다.   천고(千古)로창천(蒼天)이허방빠져있는함정(陷穽)에유언(遺言)이석비(石碑)처럼은근히침몰(沈沒)되어있다.   그러면이곁을생소(生疎)한손짓발짓의신호(信號)가지나가면서무사(無事)히스스로와한다.   점잖던내용(內容)이이래저래구기기시작이다. *

 

* 자화상(自畵像) 37년 - 김광섭
장미(薔薇)를 얻었다가
장미를 잃은 해
 
저기서 포성(砲聲)이 나고
여기서 방울이 돈다 
 
힘도 아니요 절망(絶望)도 아닌 것이
나의 하늘을 흐리우던 날
 
나는 화폄을 치는
추근한 산호(珊瑚)였다

아침에 나간 청춘(靑春)이
저녁에 청춘을 잃고 돌아올 줄은 믿지 못한 일이었다 
 
의사(醫師)는 칼슘을 권했고
동무는 술잔을 따랐다

 
드디어 우수(憂愁)를 노래
하여
익사(溺死) 이전의 감정(感情)
을 얻었다 
 
초라한 붓을 들어 흰 조희에
니힐의 꽃을 담뿍 그렸다 *

 

* 자화상 - 노천명
5척 1촌 5푼 키에 2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전시대(前時代)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 않게 얹혀져 가냘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고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삼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건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고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간다 대[竹]처럼 꺾어는 질지언정
구리[銅]처럼 휘어지며 꾸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    

 

* 자화상 - 한하운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飽滿症)이냐
한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매워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 쩔룸 다섯 자보다 좀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으는 나의 그림자

이렇게도 우득히 웬 땅을 덮는 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

 

* 자화상 - 김현승
내 목이 가늘어 회의(懷疑)에 기울기 좋고
혈액은 철분(鐵分)이 셋에 눈물
이 일곱이기
포효(咆哮)보담 술을 마시는 나이팅게일.....
마흔이 넘은 그보다도
뺨이 쪼들어
연애엔 아조 실망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사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 ㅡ
사랑이고 원수고 모라쳐 허허 웃어버리는
비만(肥滿)한 모가지일 수 없는 나 ㅡ
내가 죽는 날
단테의 연옥(煉獄)에선 어느 비문(扉門)이 열리려나? *
  

* 자화상 - 박용래
한 오라기 지풀일레
아이들이 놀다 간
모래성
무덤을
쓰을고 쓰는
강둑의 버들꽃
버들꽃 사이
누비는
햇제비
입에 문
한 오라기 지풀일레
새알
흙으로
빚은 경단에
묻은 지풀일레
창을 내린
하행열차
곳간에 실린
한 마리 눈[雪] 속 양(羊)일레 *

 

* 自畵像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  

 

* 자화상 - 고은
내가 부른 노래
내가 부르지 못한 노래들이
우르르
불 켜들고 내달려오는
나일 줄이야
이 찬란한 후회가 나일 줄이야 *
   

* 자화상 - 김규동
고향에 돌아못가는 슬픔이
화석으로 남아
몸과 마음 함께 차다
작은 키가 불편하나
나폴레옹이 등소평이 키가 작았다는 말
은근히 위안이 되었다
재봐야 34킬로밖에 안 나가는
몸무게는
바람부는 날이 겁난다
코가 조금 큰 편이고 거기다 인중이 길어
목숨이 질기겠다고
70년 전 함경도 칠보산 관상쟁이가 말했다
죽은 듯이 붙어 있는 자그마한 귀는
전쟁 때 한강 모래밭에 쏟아지던
전투기의 기총소사와 폭탄소리 간직하고 있고
밭이랑 같은 이마의 주름살은
어려운 항해 아로새겨진 지도
회한과 추억의 소낙비 퍼붓는다
점점 작아지는 침침한 눈은
눈물이 약간 고여
양떼 몰고 가는 사막의 검은 옷 입은 여인을 그리워한다
꽉 닫혀 있어다오 입아
많이 지껄인 날은 부끄러워 못 참고
지껄이지 않은 날은 편안히 단잠 잔다
흰 눈 날리는 머리
아내가 염색을 해주고 싶어 못 견뎌하지만
백발이면 어떠냐 그냥 내버려둔다
꿈을 많이 꾼다
쉬르리얼리스트의 꿈이 대부분
이지만
때로 꿈속의 울음이 깨어서도 이어진다
어린 시절 공부 못하는 장난꾸러기였던 나는
85살 되어서도
온갖 장난이 하고 싶어 사방 두리번거리는 도깨비다 *

 

* 자화상 - 이수익 
제 몸을 부수며
종(鍾)이
운다

울음은 살아있음의 명백한 증거
마침내 깨어지면 울음도 그치리

지금
존재의 희열을 숨차게 뿜으며
하늘과 땅을 느릿느릿 울려 터지는

종소리
종소리
그것은 핏빛 자해(自害)의 울음소리 *

 

* 자화상 - 정희성

어느 천재 시인이 일필휘지로

하루저녁에 휘갈겨 쓴 시집 한 권을

읽고 읽고 또 소리 내 읽는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석 달 열흘이 걸려서야 다 읽었다 

이 귀신이 필경 

내가 미치는 꼴을 보고 싶겠지 

낯선 거울 앞에서 나도 

귀를 잘라버리고 싶다 *

* 정희성시집[돌아다보면 문득]-창비

 

* 창녀와 천사 - 최근의 자화상 - 문정희
나 요즘 창녀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천사이며 창녀인
눈부신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어느 때 치마를 벗을지를 몰라
어느 벌판 혹은 어느 강줄기를 따라가야
술집과 벼락이 있는 줄을 몰라
여름 날 동안 누가 주인인지를 몰라
문 밖에서 매양 서성이고 말았다
폭풍을 먹어치우고 구름 속에
자수정 눈물을 흘리는 천사도 아니었다
별들이 내려와 어깨를 어루만지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굴절광 하나를
낳고 싶었지만   
쥐라기 시대 파충류 같은 신비한 시구 하나를
허공에다 점점이 키우고 싶었지만
밤낮 짐승의 몸으로 쫓기며
진눈깨비처럼 빈 들에서 울다가 
제자리에 현기증처럼 스러질 뿐이었다 *

 

* 자화상 - 김용택  

사람들이 앞만 보며 부지런히 나를 앞질러갔습니다

나는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눈도 보고, 빗줄기가 강물을 딛고 건너는 것도 보고    

꽃 피고 지는 것도 보며 깐닥깐닥 걷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갔지요

난 남았습니다

남아서, 새, 어머니, 농부, 별, 늦게 지는 달, 눈, 비, 늦게 가는 철새

일찍 부는 바람

잎 진 살구나무랑 살기로 했습니다

그냥 살기로 했답니다

가을 다 가고 늦게 우는 철 잃은 풀벌레처럼

쓸쓸하게 남아

때로, 울기도 했습니다

 

아직 겨울을 따라가지 않은

가을 햇살이 샛노란 콩잎에 떨어져 있습니다

유혹 없는 가을 콩밭 속은 아름답지요

 

천천히 가기로 합니다

천천히, 가장 늦게 물들어 한 대엿새쯤 지나 지기로 합니다

 

그 햇살 안으로 뜻밖의 낮달이 들어오고 있으니 *

*김용택시집 [수양버들]-창비  

 

* 자화상 - 장석남

무쇠같은 꿈을 단념시킬 수는 없어서
구멍난 속옷 하나 밖에 없는 커다란 여행 가방처럼
종자로 쓸 녹두 자루 하나밖에 아무 것도 없는 뒤주처럼
그믐 달빛만 잠깐 가슴에 걸렸다 빠져 나가는 동그란 문고리처럼
나는 공허한 장식을 안팎으로 빛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을 알았어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을 알았어도
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봉지 같이
비닐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
다시 외로운,
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 없이 흔들리는
외로운 삶

은하수에 새털구름아 어디만큼 가느냐
배거번드(vagabond)처럼 함께 흐르고 싶다
만돌린처럼 외로운 삶
고드름처럼 외로운 삶

 

* 자화상 - 문인수

나는 저 한 덩이 구름,

뭔 짓이 참 뭉게뭉게 저리 많다.

아, 그러나 결국 맑게 갠 하늘,

나는 말짱 할 말 없는 것이다. 

 

* 자화상 -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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