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어 색시에게 - 이종문
살얼음
끼어 있는
어물전 좌판 구석
새 신랑 고등어가 새 색시 고등어를
뒤로 꼭, 껴안고 누웠다
춥제, 그자
춥제
그자
저그 신랑 품에서도 옛 애인 생각하는
색시야
이제 그만
뒤로 벌떡 돌아누워
뜨겁게 너그 신랑을
꼭 껴안아
주지
그래 *
* 입동(立冬)
녹슨 굴렁쇠 하나 이리 저리 굴리면서
귀뚜라미 한 마리 먼 산맥을 넘어 와서
이 세상 家家戶戶를 다 헤매고 다니더니....
폐광촌 빈 아파트 열 길 벼랑 타고 올라
베란다 강아지풀, 그 옆에서 울고 있다
모처럼 마음 턱 놓고 목을 놓아 울고 있다
이박 삼일 동안 정식으로 날을 잡고
저무는 天地玄黃 가이없는 저녁놀을
이 세상 울고 싶은 놈 다 따라와 울고 있다 *
* 수박
속살이
붉어지면
칼날이 들어올 줄
수박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붉어진다
서늘한 옥쇄(玉碎)의 쾌감!
칼은
모를 것이다 *
* 시인
알고 보니 시인이란 게 개코도 아니더군
시인 김선굉이 찔레밭에 엎어져서
가시가 온통 박혀 고슴도치 되었는데
시인 서너 명이 다 달라붙어봐도
조그만 가시 하나도 뽑아내지 못했다네
아 글쎄, 시인이란 게 바늘 하나만도 못해 *
* 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
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
* 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다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돌아오나
아마 다시 재나보다 *
* 산
풀 뜯는 소의 등을 어루만져 보고 싶듯, 어루만져 보고 싶다, 되새김질 하는 산을
때때로 구름을 보다
요령소리
내는 산을 *
아무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된다 *
* 큰 일
시인 두보 영감 큰 일이 날 뻔 했다
강변 꽃소식을 알릴 데가 전혀 없어
아 글쎄, 이 영감쟁이 미칠 뻔한 것이다
시인 아무개도 큰 일이 날 뻔 했다
엊저녁 저녁노을 그 환장할 불티들을
알릴 데 아무데도 없어 미칠 뻔한 것이다
우리 과 한 처녀도 미칠 뻔한 모양이다
벗꽃이 지랄발광하고 팝콘을 터뜨릴 때
미치지 않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
* 이종문시인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대구시조문학상 수상
-시집 [저녁밥 짖는 소리][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 하지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