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이종문 시 모음

효림♡ 2010. 10. 1. 07:55

* 고등어 색시에게 - 이종문  

살얼음

끼어 있는

어물전 좌판 구석

새 신랑 고등어가 새 색시 고등어를

뒤로 꼭, 껴안고 누웠다

춥제, 그자

춥제

그자

 

저그 신랑 품에서도 옛 애인 생각하는

색시야

이제 그만

뒤로 벌떡 돌아누워

뜨겁게 너그 신랑을

꼭 껴안아

주지

그래 *

 

* 입동(立冬)
녹슨 굴렁쇠 하나 이리 저리 굴리면서

귀뚜라미 한 마리 먼 산맥을 넘어 와서
이 세상 家家戶戶를 다 헤매고 다니더니....

폐광촌 빈 아파트 열 길 벼랑 타고 올라
베란다 강아지풀, 그 옆에서 울고 있다
모처럼 마음 턱 놓고 목을 놓아 울고 있다

이박 삼일 동안 정식으로 날을 잡고

저무는 天地玄黃 가이없는 저녁놀을
이 세상 울고 싶은 놈 다 따라와 울고 있다 *

 

* 수박  

속살이

붉어지면

칼날이 들어올 줄

수박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붉어진다

서늘한 옥쇄(玉碎)의 쾌감!

칼은

모를 것이다 *

 

* 시인

알고 보니 시인이란 게 개코도 아니더군

 

시인 김선굉이 찔레밭에 엎어져서

가시가 온통 박혀 고슴도치 되었는데

시인 서너 명이 다 달라붙어봐도

조그만 가시 하나도 뽑아내지 못했다네

 

아 글쎄, 시인이란 게 바늘 하나만도 못해 *

 

* 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

 

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

 

* 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다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돌아오나

 

아마 다시 재나보다 *

 

* 산

풀 뜯는 소의 등을 어루만져 보고 싶듯, 어루만져 보고 싶다, 되새김질 하는 산을

때때로 구름을 보다

요령소리

내는 산을 *

 

* 효자가 될라 카머 - 김선굉 시인의 말

아무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된다 *

 

* 큰 일  

시인 두보 영감 큰 일이 날 뻔 했다

강변 꽃소식을 알릴 데가 전혀 없어

아 글쎄, 이 영감쟁이 미칠 뻔한 것이다

시인 아무개도 큰 일이 날 뻔 했다

엊저녁 저녁노을 그 환장할 불티들을

알릴 데 아무데도 없어 미칠 뻔한 것이다

우리 과 한 처녀도 미칠 뻔한 모양이다

벗꽃이 지랄발광하고 팝콘을 터뜨릴 때

미치지 않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 

 

* 이종문시인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대구시조문학상 수상

-시집 [저녁밥 짖는 소리][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 하지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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